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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포터의 음악과 인생: 영화 '드 러블리'의 매력 영화 '드 러블리'는 영화 자체보다는 대중가수들의 공연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엘비스 코스텔로, 다이애나 크롤, 로비 윌리엄스, 셔릴 크로, 알라니스 모리셋, 나탈리 콜 등이 잔뜩 나온다. 그들의 노래와 공연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꼭 봐야하는 영화가 아닌가. 스타 가수를 몰아서 볼 수 있는 영화는 흔하지 않다. 간간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들을 찾는 재미에 빠져서 스토리를 놓치기도 했지만, 공연을 듣는 것만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많은 가수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알라니스 모리셋이었는데, 뮤지컬 춤까지 멋들어지게 추고 'Let's Do it (Let's Fall in Love)'라는 노래를 아주 맛깔스럽게 잘 불러줬다. 영화 '드 러블리'는 게.. 2025. 2. 13.
인용이 미국에서 중요한 이유 미국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토론할 때 가장 많이 취하는 동작이 있다. 말하는 중간에 양손을 들어서 양쪽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두 번 꼬부리는 것이다. 처음에 난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서 쳐다보기만 했다. 그 손동작은 문장기호 따옴표("")를 형상화한 거라고 들었다. 가끔 그런 손동작 대신에 인용하거나, 강조하는 말 앞에 'quote, unquote'라고 붙이기도 한다. 인용부호가 일상의 대화에도 쓰이는 걸 보고, 문화적 차이라는 걸 느꼈다. 뉴욕타임스나 기타 지역신문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코너가 오늘의 인용문이다. 신문들은 그날의 기억할 만한 사건이나 말 가운데 추려서 보여준다. 가끔 명언이나 충고도 있지만, 위선적인 정치인들의 말도 그대로 인용된다. 미국의 독특한 인용의 문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2025. 2. 11.
죽음 이후에 계속된 삶의 영화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진 밖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던 정원의 노력이 부질없이 그는 영정사진 속에 갇힌다. 영정사진은 그 사람의 죽음의 마지막 기록인 동시에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역설적 매체이다. 영정사진 속의 정원의 웃음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슬픔을 상징한다. 정원의 운명을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낸 장면 하나가 있다. 카페 안에서 정원이 창밖의 다림을 손가락으로 만진다. 운명이라는 유리에 갇힌 정원의 마지막 손짓,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투명한 유리창은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날카롭게 다림과 정원을 갈라놓았다. 나는 가끔 사진이 유리창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은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과거의 기억을 보여준다. .. 2025. 2. 6.
중경삼림: 사랑과 기억의 공간 시간은 감지할 수 없고 인위적으로 재단하거나,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서만 그 흐름을 추측할 뿐이다. 시계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개인에 따라 다른 주관적 시간만을 느낄 뿐이다. 시간은 일회적이므로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관념이다. 따라서 인간이 저지르는 무한한 실수에 비교하면 시간은 냉혹하기가 이를 때 없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개인에 딸린 문제이지만 시간은 전체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의 장이 된다. 집단의 삶을 일반화시켜 놓은 시간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집단을 떠나서 개인으로 옮아오면 본질적인 속성이 변하고 공간으로 고착된다. 개인만의 특별한 세계 속에 시간은 죽음을.. 2025. 2. 6.
고독의 절정, 시티 라이트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 코미디의 분위기 아래로 흐르는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웃음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웃을 수 있는 만큼의 울음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감정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도 어려운데 영화 '시티 라이트'는 그 경계선을 넘나드는 재미를 알게 해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채플린의 코미디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슬픔을 감춘 내면적인 영화이다. 무성 영화의 특성상 대사로 처리해야 할 것을 몸짓으로 대신하려다 보니 다소 과장된 면도 있지만, 감추어진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울한 감정은 부분적으로 영화 속에서 해소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권위나 힘에 억눌려 있다. 시티 라이트의 첫 장면에서 채플린은 좀 엉뚱하게 등장한다. 시장인 것처럼 보이는 사.. 2025. 2. 6.
할리우드 배우의 잃어버린 소통을 찾는 여정 위스키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할리우드 영화배우 밥(빌 머레이)은 생소한 일본문화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밥이 타고 있는 리무진 바깥의 풍경은 시차만큼이나 이질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늦은 밤에 갖가지 총천연색의 네온사인과 커다란 전광판으로 완전히 도배한 동경은 할리우드나 뉴욕과는 사뭇 다르다. 그를 맞이하는 일본인들의 환대는 왠지 모를 '낯선' 감정이 가슴 속에 묘한 동선을 그린다. 알아듣기 어려운 일본식 억양의 영어로 말을 걸고,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때론 허리를 숙여서 인사로 응대한다. 호들갑스러운 환대와 점잖은 친교의 표현이 묘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밥은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다. 사진작가와 결혼 후 남편을 따라서 일본으로 여행 온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답답한 일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 2025.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