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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매드맨: 돈 드레이퍼의 성공과 욕망

by 알기쉽게 해설가 2025.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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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틈만 나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다. 까마득한 과거인 거 같지만 1960년대 미국의 모습이다. 1960년대를 떠올리면 히피, 우드스톡 페스티벌, 마틴 루터 킹, 여성 인권운동 등이 떠오른 게 보통일 것이다.

1960년대 미국 사회와 광고

이 드라마 시리즈는 미국에서 격동의 사회 변화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 1960년에서 시작한다. 백인 남자가 모든 권리를 다 쥐고 있고 각종 사회적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미국은 소련과 냉전 상태였다.

 

미드 매드맨

 

담배 연기가 뿌연 사무실처럼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과거가 "매드맨"이라는 생생한 드라마로 돌아왔다. 정말 미국의 1960년대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절에 활동하던 광고업계 종사자에게 조언을 받고 시대적 분위기에 맞는 패션과 무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파는 광고업계의 현실을 직접 다룬 드라마가 미국 방송사에서 드물었다. 범죄물과 리얼리티쇼가 판치는 미국 방송계에서 60년대 광고업계를 다룬 드라마는 확실히 별종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HBO와 Showtime 두 군데 방송사에 거절당한 경력이 있다. 그 덕에 프리미엄 채널이 아닌 기본 케이블 채널 AMC는 성공적인 히트작을 낼 수 있었다.

 

아마도 백인 남자 가운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비서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사무실에서 술과 담배를 마음대로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으니까. 거꾸로 생각하면 백인 남자가 아니었던 여성, 흑인, 동성애자, 이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끔찍한 현실이다. 시민운동, 인권운동의 광풍으로 들어가면서 60년대는 변화의 시기가 되었다. 60년대를 다룬 다양한 책, 연구논문,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그 시기가 미국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매드맨"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갈등과 변화를 무시하지 않고 주류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다룬다.

 

 

타이틀 화면에서 검은 실루엣의 정장 차림의 남자가 고층빌딩에서 추락한다. 그 배경으로 60년대 광고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타이틀 화면을 보고 이 시리즈에 마음에 끌렸다. 추락하는 사나이는 시리즈의 주인공 "돈 드레이퍼"다. 시리즈는 돈 드레이퍼의 좌절과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성공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도 추락은 술과 담배와 여자로 방탕했던 시대의 도덕적 추락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상품을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꾸며야 하는 광고업계의 모순적 상황에 대한 풍자였을까. 아니면 아메리칸드림 성공 신화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효과일지도 모른다.

 

"매드맨"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화려한 타이틀 화면에 비해서 느리고 지루한 사건 전개 때문에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느리지만 단단한 전개로 담아낸 사회적 드라마를 보면서 그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돈 드레이퍼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상관의 사망을 계기로 그의 정체성을 훔쳐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부정한 채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의 아빠로 새 삶을 살고 있다. 가짜 정체성으로 채워진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촛불 같다. 어쩌면 사람들의 꿈에 기대어 거짓말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계에 대한 은유가 바로 돈 드레이퍼이다. 광고는 허풍이고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다. 돈 드레이퍼처럼 성공적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다.

 

돈 드레이퍼는 나쁜 주인공이다. 여자를 바꾸면서 수없이 바람을 피우고 아내가 모처럼 모델로 일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만두게 하는 자기중심적 남자다. 바람피운 것을 아내가 알게 되었어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외로움을 무기로 착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한다. 돈 드레이퍼는 이어지는 성공 신화는 성공이 착하게 사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 시리즈의 다른 주인공은 "페기 올슨"은 비서로 일을 시작해서 카피라이터가 된다. 여성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여자들이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받고 타자기를 치는 비서가 전부였다. 페기는 남자 동료의 차별과 심지어 여자 비서의 시샘까지 온몸으로 받으며 이겨내야 했다. 페기는 카피라이트 능력이 뛰어났지만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어 복사기 옆에서 업무를 봐야 했다. 페기의 눈에 비친 돈 드레이퍼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아메리칸드림도 백인 남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페기의 시점에서 회사는 성희롱과 성차별이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야만적 사회였을 것이다.

 

여성문제만 아니라 동성애자, 유대인, 흑인 차별에 관한 에피소드가 차분하게 절제된 어조로 등장한다. 광고인은 이런 사회문제 누구보다 민감하게 접근했다. 당장 상품 판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흑인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무슨 텔레비전을 사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유대인에게 관광하는 이유를 물어보기도 한다.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판매에 빠질 수 없는 동력이다. 사회적 이슈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기업의 이익에 충실하게 봉사해야 하는 처지가 광고인의 운명이다. 나름대로 예술적 작업을 한다고 믿지만 결국 광고의 성공은 상품 판매가 결정한다.

돈 드레이퍼의 탐욕과 성공

이 시리즈는 60년대를 돌아보는 시대극이지만 인간의 탐욕을 탐구하는 심리물로 볼 수도 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약점을 이용해서 몰아내고 밟고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쉽게 이성의 유혹에 빠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원하는 대로 다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연구다.

 

해고당하는 동료를 위로하다가 사무실로 들어가서 뛸 듯이 기뻐한다. 바로 그 자리는 자신의 승진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씁쓸한 현실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도 마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인간의 잔인한 욕망이 표현된 것일까?

 

또 다른 이야기 축은 돈 드레이퍼의 과거이다. 시리즈가 전개될수록 그의 어두웠던 과거가 드러난다. 아내조차 모르는 돈 드레이퍼의 과거는 자아 찾기의 여행이다. 부끄러웠던 과거는 돈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찾아온다. 피하다가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돈 드레이퍼의 복잡한 내면이 투명해지는 순간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점점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 AMC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에미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쓸었다.

 

참고로 "매드맨"이라는 용어는 매디슨 거리(Madison Avenue)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50~60년대 뉴욕의 매디슨가에 유명한 광고회사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광고인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60년대 미국 광고인의 사생활과 드라마가 궁금하다면 이 드라마를 봐야 한다.

 

매드맨은 1960년대 광고업계를 배경으로 미국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담아낸다. 돈 드레이퍼라는 이중적인 인물이 광고계에서 스타가 되는 모순적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다룬다. 돈 드레이퍼는 상품을 팔기 위해선 영혼까지 팔아야 하는 광고의 역설적 상황을 캐릭터로 표현한 듯 다가온다. 광고 업계의 극적인 드라마가 궁금한 분이라면 이 작품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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