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이 2008년 네이버 블로그로 소설 연재를 시작했다고 해서 며칠째 재밌게 읽고 있다. 이렇게 블로그로 소설 연재한 건 박범신이 '촐라체'로 먼저 했다. 네이버가 이걸로 재미를 좀 봤는지 이번에는 황석영 작가를 영입해서 네이버 블로그 띄우기에 나섰다.
포탈사이트 네이버가 박범신이나 황석영 같은 비중 있는 소설가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모르지만, 거물급 작가이라면 꽤 후한 대우를 받았으리라 믿는다.
나는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로 연재하는 소설도 잘 보지 않았다. 단편이라면 모를까 장편을 찾아가며 읽는다는 건 여간 노력하지 않으면 힘들다. 앞으로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궁금해 하고 고민하는 건 연재만화, 연속극만으로 충분하다. 소설은 책으로 묶여야 읽을 맛이 난다.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성격을 극복할 만큼 황석영의 작품을 좋아해서 '개밥바라기별'을 읽기 시작했다. 벌써 3회까지 나왔는데 후딱 읽어 버렸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성장소설이라 아마도 끝까지 챙겨가며 읽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블로그로 연재하고 RSS 구독 방식으로 편하게 배달되어 무료로 읽을 수 있다. 블로그 세계가 점점 커가고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이제 소설도 블로그로 읽게 된 시대가 왔다니 감회가 새롭다.
전자책도 나온 세상이니 블로그로 소설 읽는 게 별로 신기해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 취향이 아날로그에 치우쳐 있어서 전자책은 잘 안 읽게 된다. 장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으로 책을 읽으면 쉽게 피로하고 집중도 되지 않는다. 종이책보다 전자기기 화면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눈을 피로하게 한다.
전자책으로만 볼 수 있는 글일 경우를 제외하고 웬만하면 종이책으로 읽는 게 편하다. 나는 책을 좀 지저분하게 보는 편이라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밑줄도 그어가며 메모도 하고 읽는 편이다. 블로그나 전자책은 노트 필기를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 연재소설은 워낙 짧아서 그나마 부담이 덜한 편이다. 장편을 한꺼번에 인터넷으로 읽어야 한다면 질려서 포기하겠지만 매일 조금씩 배달되는 글을 해볼 만하다.
인터넷 등장 이래로 출판시장이 위축된 것은 세계적 추세였지만 미국은 얼마 안 가서 고전 출판이 두 배로 늘었고 유럽은 본격 문학의 신간이 일 년에 수백 권씩 출간된다. 그것은 인터넷을 사용하면 할수록 기본 콘텐츠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구미 각국은 여전히 강력하게 독후감 리포트로 학업 성과를 판단하는 교육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영
황석영은 1988년부터 워드프로세서를 쓰기 시작해서 컴퓨터로 글을 쓸 정도로 신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 그는 전작 "바리데기"의 주요 독자가 10대~30대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젊은 독자와 소통하기를 원한다. 이처럼 젊은 독자와 대화하려는 열린 생각을 하는 작가들이 좋다. 세상과 소통하기 두려워하는 작가들은 작품부터 어느 순간에 정체된다.
황석영은 젊은 작가들에게 자신처럼 블로그로 글쓰기에 도전하라고 권장한다. 젊은 작가들이 인터넷을 써서 자기 작품을 알릴 기회로 삼으라는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황석영처럼 유명한 작가의 블로그는 네이버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고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의 블로그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미국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단편소설도 판다. 원래 의도는 작품만 좋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기획 의도였다. 하지만 이미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만이 팔려나가게 되었다. 독립 출판의 길도 유명 작가들의 또 하나의 창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무한한 인터넷 블로그 세계에서 소설을 발표하는 것은 새로운 실험이다. 인터넷으로 유명해진 작가들도 있지만 주로 특정 포탈에 한정되어 있다. 아직 개인 블로그로 등단하는 작가는 보지 못했다.
문학과 블로그의 만남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문학은 인터넷과 친해지지 못했다. 문학과 인터넷의 연애가 좋은 관계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네이버 홍보팀 관계자는 "보통 가볍고, 트렌디한 콘텐츠가 대세를 이루는 인터넷 공간에 정통 소설을 연재함으로써 인터넷 이용자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로맨스나 판타지 위주로 좁게 형성된 인터넷 문학 시장에 새로운 정통문학이 문을 두드렸다. 새로운 매체인 블로그와 문학이 만나서 전체 문학 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08년에 블로그에 이 글을 쓴 후에 황석영 개밥바라기 별 소설 연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소설에는 그의 청년 시절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고등학교 자퇴, 4.19의 현장에서 목격한 친구의 죽음, 일용직 노동자의 삶, 베트남전 참전의 경험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블로그 연재를 마치며 황석영 작가는 감회를 포스트로 남겼습니다. 블로그라는 새로운 미디어로 소설을 쓰고 댓글(덧글)로 독자들과 소통했던 경험을 즐겁게 기억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하던 과거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뉴미디어에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라는 신조어까지 인용했지요.
그는 개인 블로그를 방으로 비유했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광장으로 표현했습니다. 내밀한 소설의 문장을 개인 블로그에 공개하면서 광장으로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댓글로 의견을 직접 전달하는 독자들과 만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 받아들이진 않더라도 의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은 그에게 신선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블로그로 대화하는 경험은 그의 소설적 상상력을 키우는 새로운 자극이 되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았던 그의 과거까지 소환됩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벽이 무너지고 서로 뒤섞이는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작가와 독자의 거리도 어느새 좁혀졌습니다. 그 변화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황석영 작가가 받아들인 변화가 새롭진 않지만 독자와 작가의 벽은 낮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