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28 중경삼림: 사랑과 기억의 공간 시간은 감지할 수 없고 인위적으로 재단하거나,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서만 그 흐름을 추측할 뿐이다. 시계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개인에 따라 다른 주관적 시간만을 느낄 뿐이다. 시간은 일회적이므로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관념이다. 따라서 인간이 저지르는 무한한 실수에 비교하면 시간은 냉혹하기가 이를 때 없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개인에 딸린 문제이지만 시간은 전체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의 장이 된다. 집단의 삶을 일반화시켜 놓은 시간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집단을 떠나서 개인으로 옮아오면 본질적인 속성이 변하고 공간으로 고착된다. 개인만의 특별한 세계 속에 시간은 죽음을.. 2025. 2. 6. 고독의 절정, 시티 라이트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 코미디의 분위기 아래로 흐르는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웃음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웃을 수 있는 만큼의 울음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감정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도 어려운데 영화 '시티 라이트'는 그 경계선을 넘나드는 재미를 알게 해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채플린의 코미디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슬픔을 감춘 내면적인 영화이다. 무성 영화의 특성상 대사로 처리해야 할 것을 몸짓으로 대신하려다 보니 다소 과장된 면도 있지만, 감추어진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울한 감정은 부분적으로 영화 속에서 해소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권위나 힘에 억눌려 있다. 시티 라이트의 첫 장면에서 채플린은 좀 엉뚱하게 등장한다. 시장인 것처럼 보이는 사.. 2025. 2. 6. 할리우드 배우의 잃어버린 소통을 찾는 여정 위스키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할리우드 영화배우 밥(빌 머레이)은 생소한 일본문화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밥이 타고 있는 리무진 바깥의 풍경은 시차만큼이나 이질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늦은 밤에 갖가지 총천연색의 네온사인과 커다란 전광판으로 완전히 도배한 동경은 할리우드나 뉴욕과는 사뭇 다르다. 그를 맞이하는 일본인들의 환대는 왠지 모를 '낯선' 감정이 가슴 속에 묘한 동선을 그린다. 알아듣기 어려운 일본식 억양의 영어로 말을 걸고,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때론 허리를 숙여서 인사로 응대한다. 호들갑스러운 환대와 점잖은 친교의 표현이 묘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밥은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다. 사진작가와 결혼 후 남편을 따라서 일본으로 여행 온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답답한 일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 2025. 2. 6. 영화 사이드웨이가 전하는 포도주와 인생의 비유 우리 부부의 모처럼 영화 관람도 제목처럼 샛길로 샜다. 집에서 나설 때는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애비에이터'를 보기로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네버랜드를 찾아서'로 마음을 바꿨다. 결국, 표를 살 때는 우리 앞에서 서 있던 미국 아줌마들을 따라서 '사이드웨이(Sideways, 2004)'를 골랐다. 무슨 이유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두 시간 동안 두 남자의 샛길을 유쾌하게 마음껏 보고 즐겼다. 그 샛길에서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유머와 삶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를 만날 수 있었다. 우선 우리를 샛길로 인도해준 앞의 두 아줌마에게 감사드린다.샛길로 빠져버린 두 사내말 그대로 두 사내는 정상적인 생활을 벗어나, 일주일 동안의 일탈에 빠진다. 포도주에.. 2025. 2. 5. 인간과 로봇이 뒤바뀐 디스토피아 우주 식민지 건설이 한창 진행되는 미래가 1982년에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다. 미래는 무척 암울하고 비관적인 세계로 묘사되어 있다. 지구인들은 희망이 사라진 지구를 떠나 새롭게 건설된 우주로 떠나가고 있다. 어두운 하늘에는 늘 산성비가 내리고, 낡고 허름한 건물 외벽을 가득 메운 거대한 광고가 있고, 온갖 인종이 모여있는 거리는 북적거린다. 2019년 LA에는 전원적인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도시의 더럽고 비인간적인 모습만 남아 있다. 컴컴한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굴뚝은 폭발하며 기계음을 낸다. 한눈에 보더라도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 우울한 풍경이다. 화염에 휩싸인 하늘을 나는 비행선과 불빛으로 가득 찬 건물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다. 눈동자는 세계를 인식하는 창이면서 동시에 내면을 .. 2025. 2. 1. 현기증나는 추락의 공포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자주 현기증을 느끼는 형사 스카티 퍼거슨(제임스 스튜어트)이 사고로 경찰직을 그만두면서 우연히 겪게 되는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대학 동창이자 애인이었던 미지가 있다. 미지는 스카티를 여전히 사랑하기에 그에게 도움을 준다. 미지와 스카티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전반적인 극의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다. 현기증의 근원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암시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다가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범인을 추적하던 스카티는 지붕에서 매달려 아래를 바라보다 현기증을 느낀다. 그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관을 보고 끔찍해진다. 자신도 경관처럼 아래로 떨어져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스카티가 겪고 있는 공포는 일시적.. 2025. 2. 1.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