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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에 계속된 삶의 영화들

by 알기쉽게 해설가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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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진 밖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던 정원의 노력이 부질없이 그는 영정사진 속에 갇힌다. 영정사진은 그 사람의 죽음의 마지막 기록인 동시에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역설적 매체이다. 영정사진 속의 정원의 웃음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슬픔을 상징한다.
 
정원의 운명을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낸 장면 하나가 있다. 카페 안에서 정원이 창밖의 다림을 손가락으로 만진다. 운명이라는 유리에 갇힌 정원의 마지막 손짓,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투명한 유리창은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날카롭게 다림과 정원을 갈라놓았다.
 
나는 가끔 사진이 유리창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은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과거의 기억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진을 보는 게 아니라, 유리창 너머의 '옛날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아들의 방'의 지오반니의 조깅은 무척이나 일상적이다. 지오반니에게 조깅은 환자들의 상담이라는 '직업적인' 일상을 벗어나는 '개인적인' 일상이다. 지오반니는 급기야 강박증 환자에게 자신이 조깅할 때 신는 신발을 보여주면서 운동을 권한다. 지오반니에게 조깅을 권태를 극복하는 길이었다. 치료를 돕는 의사의 신분이 그에게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오반니는 아들의 죽음 후에 쉽게 환자에 감정 이입되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겪는다.
 
결국 지오반니는 자신이 더 객관적일 수 없는 걸 깨닫고 의사 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한다. 정신 상담의사와 환자라는 관계 속에서 지오반니는 권태를 느꼈고, 모든 걸 훌훌 터는 기분으로 조깅을 나섰다.
 
지오반니는 상담을 통해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를 돕는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성도착증 환자, 자살 기도자, 편집증 환자들이다. 사실 대화라고는 하지만, 환자들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의사는 그냥 들으면서, 맞장구칠 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환자들은 상태가 호전되기도 하고,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지오반니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안드레이가 학교에서 암모나이트를 훔쳤다는 얘기를 듣고,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주변의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다. 지오반니와 달리 파올라는 아들이 훔치지 않았다는 말을 그냥 믿는다. 그리고 파올라는 지오반니에게 제발 믿으라고 말한다. 안드레이는 이러한 태도 때문인지, 어머니에게만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한다. 아버지에게 고백하려 했지만, 안드레이는 좋았던 분위기 탓에 말하지 못했다.
 
안드레이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놓인 신뢰라는 다리를 허물기 싫었다. 지오반니는 자식들과 관계가 그만큼 소원했었다. 체육관에서 연습 중이던 딸(이렌느)을 데리러 간 지오반니는 면박을 당한다. “엄마가 보냈어요? 이러지 않았잖아요.”

난 더 이상 네 곁에 없어
저 하늘 위 구름을 보네
내가 떠날 때 미소를 지어다오
쉽진 않지만 산다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거니까
안녕, 내 사랑, 안녕
구름은 벌써 저만치 멀어지네

 
차 안에서 가족들이 합창으로 부르던 노래다. 가족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던 순간에 부른 노래가 죽음을 준비하는 노래라니. 행복한 순간은 벌써 구름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지오반니는 조용히 문을 차례로 열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의 개인적인 고독은 가족이 있는 곳으로
오면서 비로소 환해진다.
 
영화 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아들이 사라지고 없는 방에 묵묵히 앉아서 지오반니는 아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자신만의 조깅으로 아들을 초대하고 싶었고, 모두 같이 차 안에서 노래 부르는 순간이 무척이나 그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원은 다림에게 쓴 편지를 차마 부치지 못한다. 캠프에서 만난 여자친구 아리안나가 보낸 편지는 안드레이가 받지 못한다. 배달되지 못한 편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걸까? 하지만 정원은 다림에게 다른 편지로 대신 마음을 전한다. 자신의 사진관에 다림의 사진을 걸어둔 거다. 시간이 좀 흐른 뒤 다림은 사진관에 걸려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흐뭇하게 웃음 짓는다.
 
아리안나가 보낸 편지는 비록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지만, 그의 가족에게 전달된다. 안드레이의 가족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보낸 연애편지 속에서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한다. 어머니는 이 편지가 아들이 보낸 편지인 것처럼 기뻐하고, 아버지는 아리안나가 갖고 있던 사진 속 아들의 모습에 눈물을 보인다.
 
이메일이 일상이 된 요즘 편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하면서 마침내 편지를 완성하고 봉투에 넣어 봉하고 우표를 붙이고 보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편지 받을 상대에 대한 생각을 무던히 했던 기억이 난다.
 
아리안나의 편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안드레이 집에 도착했건만, 안드레이는 그 편지를 읽을 수 없다. 안드레이 가족은 이 편지로 아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안나가 방문했을 때도 아들의 몫까지 대신해 환대해 주었다. 정원이 쓴 편지는 다림이 받아보지 못했지만, 다림은 사진관 속 자신의 사진을 통해서 정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 후에 관해서 얘기해주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당당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추억이 되지 않고 사랑을 간직하고 떠날 수 있었다는 정원의 독백은 아마도 다림에게 전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림의 씩씩한 웃음에는 삶의 활기가 넘친다.
 
'아들의 방'의 안드레이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가족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의사를 관두게 되었고, 어머니는 아들의 연인에게 집착하였고, 여동생은 경기중에 주먹을 휘둘러 퇴장당했다. 안드레이 여자친구의 방문은 이들에게는 죽은 안드레이를 맞이하는 의식과 같다. 지오반니는 무전여행 중이던 아리안나와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스테파노를 국경선까지 바래다주는 과잉친절을 보여준다.
 
잠에서 깨 놀라서,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따지었던 딸을 바라보던 부부는 웃음을 터뜨린다. 딸은 일요일이면 시합에 다시 출전해야 한다구 울상 짓는다. 살아있는 자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죽은 자에 홀려서 평생을 보낼 순 없다. 가족은 안드레이를 보내듯 아리안나 일행을 국경 너머로 보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리안나의 시점에서 안드레이 가족을 바라본다. 살짝살짝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가족. 아리안나와 안드레이는 그렇게 이별을 맞이한다. 아리안나도 안드레이 가족도 안드레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슬쩍 엿보듯 안드레이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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