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28 이웃집 토토로: 어른의 성장과 잃어버린 가치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는 단순히 어린아이의 꿈과 희망만 담겨 있지는 않다.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본 어린 시절의 추억도 담겨 있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진 공간에 대한 짧은 기행이다. 따라서 토토로가 보여주는 세계는 현대 일본의 도시를 벗어나 있다. 현대를 떠나 시간에 역행하는 시골의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토토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토토로가 사는 마을은 이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마을의 이야기이지만, 그 생활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라지고 있는 가치들에 대한 예우이며, 현대에 다시 그것들을 불러들이는 주문과 같다. 작은 마을에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토토로를 중심으로 부활한다. 그 부활의 중심에는 어린 두 소녀가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들은 그만큼 사회의 주류와는 .. 2025. 2. 13. 인생은 운의 연속이라는 영화 매치 포인트 영화 '매치 포인트'의 첫 장면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테니스 코트를 오가던 공이 네트에 걸려서 위로 살짝 튕겨 올라가서 멈춰버린다. 공이 어느 코트로 떨어지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의미를 던져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 알게 되겠지만, 허공에 멈춘 공은 주인공의 운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가 기대한 건 우디 앨런 감독 영화의 대표적 정서인 수다스러운 뉴요커 코미디였지만, 이번 영화는 지독한 블랙 코미디였다. 운명의 힘에 이끌린 인간의 이야기는 우디 앨런 자신의 인생과 겹쳐진다. 35살의 나이 차이와 한국입양아와 유대인 뉴요커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선 자신의 사랑도 운명적 만남이다. 그리고 뉴욕을 배경으로 기획했던 '매치 포인트'가.. 2025. 2. 13. 영화 '아이스 스톰'이 해석한 미국 중산층 가족의 위선 영화 '아이스 스톰 (1997)'은 전혀 회복할 수 없어 보이는 가족의 화해를 다룬 이야기이다. 영화의 도입부와 결말은 폴(Tobey Maguire)이 뉴욕에서 근교의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장면으로 겹친다. 한차례 아이스 스톰이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다. 마침내 정전으로 전 도시의 활동이 멈춘다. 정적을 뚫고 얼음을 지치며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폴이 마주한 가족은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을 연상시킨다. 아버지는 마침내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회복 불가능한 관계들이 영화에 산재해 있다. 벤(Kevin Kline)과 엘레나(Joan Allen)의 부부 관계도 이미 파탄이 난 상태이고, 벤은 자식들과도 전혀 소통할 수 없다. 벤과 바람을 피우는 이웃집 부인인 제이.. 2025. 2. 13. 영화 차이나타운 (1974) 해석: 감춰진 권력을 파헤치기 영화 '차이나타운(1974)'는 다양한 권력관계가 서로 다투는 이야기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댐 건설을 둘러싼 이권 세력의 다툼이다. 수자원의 소유주였던 크로스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방해 세력인 멀웨이를 살해한다. 이것은 사건의 발단이었다. 루 형사 반장은 예전의 동료였던 사설탐정 키티스를 수사권으로 압박한다. 백인 미국인 주인은 하인 중국인을 괴롭힌다. 키티스는 비서인 엘리스를 마음대로 대한다. 이들의 지배 관계와 그 식민성을 떠나서 차이나타운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 지배와 종속을 둘러싼 갈등 속에 폭력과 히스테리가 발생한다. 댐에서 물이 방류되는 것은 이들 세력의 싸움을 의미하며, 동시에 지배 세력의 권력이 세고 있는 것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 지배권의 승리로 돌아가며 비.. 2025. 2. 13. 콜 포터의 음악과 인생: 영화 '드 러블리'의 매력 영화 '드 러블리'는 영화 자체보다는 대중가수들의 공연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엘비스 코스텔로, 다이애나 크롤, 로비 윌리엄스, 셔릴 크로, 알라니스 모리셋, 나탈리 콜 등이 잔뜩 나온다. 그들의 노래와 공연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꼭 봐야하는 영화가 아닌가. 스타 가수를 몰아서 볼 수 있는 영화는 흔하지 않다. 간간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들을 찾는 재미에 빠져서 스토리를 놓치기도 했지만, 공연을 듣는 것만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많은 가수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알라니스 모리셋이었는데, 뮤지컬 춤까지 멋들어지게 추고 'Let's Do it (Let's Fall in Love)'라는 노래를 아주 맛깔스럽게 잘 불러줬다. 영화 '드 러블리'는 게.. 2025. 2. 13. 죽음 이후에 계속된 삶의 영화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진 밖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던 정원의 노력이 부질없이 그는 영정사진 속에 갇힌다. 영정사진은 그 사람의 죽음의 마지막 기록인 동시에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역설적 매체이다. 영정사진 속의 정원의 웃음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슬픔을 상징한다. 정원의 운명을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낸 장면 하나가 있다. 카페 안에서 정원이 창밖의 다림을 손가락으로 만진다. 운명이라는 유리에 갇힌 정원의 마지막 손짓,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투명한 유리창은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날카롭게 다림과 정원을 갈라놓았다. 나는 가끔 사진이 유리창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은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과거의 기억을 보여준다. .. 2025. 2. 6.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