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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슈퍼 히어로 영화의 윤리적 딜레마

by 알기쉽게 해설가 2025.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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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2009)은 슈퍼 히어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논리에 도전하고 그걸 깨뜨린다. 절대악에 맞서는 선한 영웅인 슈퍼 히어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의 윤리적 갈등을 보여준다. 슈퍼 히어로의 선택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가 품게 된 내면적 갈등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리뷰에서 그 과정을 자세히 다룰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를 파괴함

만약 슈퍼 히어로의 활약으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이겼다면 하는 가설이 바탕이 된 이 영화는 권력과 윤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2시간 45분 동안 뼈가 부서지고 피가 솟구치는 잔혹한 영상을 보고 있자니 '왓치맨'의 초영웅은 기존의 슈퍼 히어로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선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어두운 영웅 배트맨의 세계는 적어도 명확한 선악이 존재했다. 왓치맨은 전통적 슈퍼 히어로 만화가 그린 선악의 구별을 없애고 그 속에 복잡하고 밀도 있는 혼돈의 세계를 창조한다.

 

반사회적 인물, 나치, 자본가, 허무주의적 정부요원 등으로 표현된 슈퍼 히어로는 전혀 영웅답지 않다. 이들은 폭력성과 월권행위에 대한 반발로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슈퍼 히어로를 금지하는 법까지 제정되어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다크 나이트'에서 본 적 있는 영웅이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처럼 책임감 없는 과도한 권력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영화 왓치맨의 포스터

 

'왓치맨'은 슈퍼 히어로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는 장르 파괴적 성격까지 담고 있다. 슈퍼 히어로를 통해서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 대리만족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지나치게 잔인하며 때로는 악을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살인을 즐기는 이들의 잔인함은 관객들을 눈 돌리게 한다.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를 다룬 공상과학영화이면서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영화다. 슈퍼 히어로로 대표되는 인간은 결국 불완전한 존재이며 도덕적 판단보다 감정적, 즉흥적 판단이 세상일을 결정한다.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로 슈퍼 히어로나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초강대국 미국 사회를 비판

은퇴한 슈퍼 히어로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한다. 동료 슈퍼 히어로 로샤크(재키 얼 헤일리)가 홀로 이 사건을 풀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다. 또 다른 거대한 서사구조로 세계 3차 대전이 될 소련과 핵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이 영화가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85년은 냉전이 끝나지 않았고 갈등이 점점 고조되던 해였다. 이 원작만화가 출간되었던 1986년에서 1987년까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이 작품에서 보수적 우파의 가치가 그대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는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전도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강대국을 중심으로 세계 패권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의 화두는 핵무기였다. 초강력 무기를 가진다면 세계 패권은 눈앞에 있었고 미국은 그 경쟁에서 선두에 있었다. 절대 권력을 가진다는 것에 대한 성찰도 없이 일단 가지려고 달려드는 게 당시의 분위기였다. 슈퍼 히어로들의 처지도 비슷했다.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도 서 있지 않은 이들이 슈퍼 히어로가 되어서 나쁜 짓도 많이 저질렀다. 나치와 비슷한 코미디언은 자신의 아이를 밴 베트남 여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강대국 미국이 베트남이나 남미에 저질렀던 악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힘이 곧 선이라는 논리는 슈퍼 히어로, 강대국의 존재 자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 현실을 알게 해 준다.

 

권력과 책임감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초인에 대한 실존적 고민도 이 영화에 들어있다. 다른 초인들의 능력보다 월등히 뛰어난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은 초인과 사회의 관계에 관해 성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데, 왜 슈퍼 히어로는 힘없는 인간을 도와야 할까? 이런 고민에 빠진 닥터 맨해튼은 화성에 가서 부처처럼 명상에 빠진다.

 

'왓치맨'의 슈퍼 히어로 개개인에 얽힌 내면적 갈등과 전체 서사 바깥에 존재하는 세부적 이야기까지 한 편의 독립된 영화를 묶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브라질'의 테리 길리엄 감독,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중도에 포기한 영화다. '300'의 잭 스나이더 감독은 영리하게도 원작의 기본적 뼈대만 남기고 주변 이야기를 다 쳐내고 시각적 형상화에 주력하는 방법으로 영화화에 성공한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압축적으로 그려낸 카메라의 촬영은 놀랍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원작의 철학적 깊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왓치맨'의 퇴물 영웅의 도덕적, 사회적 몰락을 첫 장면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코미디언이 고층빌딩에 있는 자신의 집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카메라는 잘 포착한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과거의 화려한 영광이 담겨있는 사진이나 기억에 대비되는 현재 슈퍼 히어로의 삶은 비루하다.

위대한 슈퍼 히어로는 없다

자본가로 변신해서 성공한 오지맨디아스(매튜 구드)나 정부 연구에 협조한 닥터 맨해튼을 제외한 나머지 슈퍼 히어로는 영웅이라기보다 평균 이하의 일상에 찌들어 있다. 연애에 빠진 나이트 아울(페트릭 윌슨)과 실크 스펙트라 투(말린 애커맨)를 통해서 인간세계로 내려온 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반 슈퍼 히어로 영화와 달리 왓치맨에서 죽는 슈퍼 히어로도 있다. 슈퍼 히어로는 더는 불멸이 아니다. 인간과 슈퍼 히어로 사이에 존재하던 커다란 벽이 무너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와 연기를 보여준 로샤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얼굴 가면과 달리 가장 일관된 슈퍼 히어로다. 전통적 영웅에 가까운 삶을 사는 로샤크는 뚜렷한 선악 관념을 가지고 있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한다. 영화 속에서 서사적 목소리로도 출연하는 로샤크는 전통적 슈퍼 히어로의 관점에서 다른 슈퍼 히어로를 바라보며 그대로 담담하게 일기장에 적는다. 로샤크의 눈에 비친 슈퍼 히어로들은 공정한 판단력으로 행동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에 압도된다. 슈퍼 히어로의 살인사건에 숨은 비밀을 밝히려는 그의 일기는 결국 초라한 슈퍼 히어로의 윤리의식에 대한 고발이 된다. 위대한 슈퍼 히어로 따위는 없다.

 

영화 후반으로 전개되어도 이야기가 도무지 하나로 모이지 않아서 무척 당황스럽다. 슈퍼 히어로 각자의 선택조차 모호하게 처리된다. 초인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명확한 결론을 전달하는 대신에 연속된 삶 속에 파묻는다. 자기희생으로 세상을 구하는 그런 결말은 없고, 세상은 이미 암흑 속이다. 암울한 미래 속에서 초영웅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나마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가장 명확한 메시지다.

 

수많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봤지만 이번만큼 원작 만화를 읽고 싶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왓치맨은 2005년 타임스지가 선정한 최고 소설 100편에도 선정될 만큼 만화팬들에게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원작 만화에 담겨있는 철학적 고민과 향수에 젖은 슈퍼 히어로의 세상 속으로 빠져서 풍덩 잠겨볼까. 누구나 선망하는 위대한 슈퍼 히어로가 사라지고 그 뒤를 대신하는 건 평범한 일반인의 도래다. 권력에 탐닉하느라 빠진 슈퍼 히어로는 언제든지 악인이 될 수 있다. 슈퍼 히어로에 의존하기만 하고 그걸 감시하는 사회가 없다면 미래는 없다. 이런 절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왓치맨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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