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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8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중년의 사랑과 매력 예전에 영화를 평가할 때는 감독 위주로 보았지만, 요즘은 배우가 더 눈에 들어온다. 연출이나 시나리오만 좋으면 영화는 당연히 좋은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하던 젊은 시절의 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출이나 대본도 중요하지만, 배우가 연기로 형상화하지 못한다면 영화는 형편없는 삼류로 전락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연기가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도 있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더스틴 호프만(하비)과 엠마 톰슨(케이트) 두 배우의 불같은 연기만 보더라도 아깝지 않은 영화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두 배우의 연기로 잔잔하게 감정선을 드러낸 수작이다. 아마도 "비포 선라이즈"을 중년 배우로 찍으면 이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노년에 가까운 남자가 공항 술집에서 40대 후반의 여자에게 말을.. 2025. 3. 11.
영화 아비정전: 부모와 아이의 관계 결핍 영화 아비정전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평생을 사랑을 찾아다니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육아의 영화다. 아비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린 시절에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 결핍된 애정으로 평생을 고생하는 캐릭터다. 팬데믹 시대의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영화 ‘아비정전(1990)’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겹도록 외로웠던 시절에 관한 아련한 추억 때문이었을까? 막상 보고 싶은 마음은 생겼지만, 미국에서 90년대 홍콩 영화를 어떻게 구해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지레 포기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알아봤더니 구독하는 HBO MAX에 있길래 내친김에 스트리밍 해서 아내랑 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든 늦은 밤, ‘아비정전’은 나의 시간을 순식간에 20대의 과거.. 2025. 2. 25.
죽음 이후에 계속된 삶의 영화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진 밖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던 정원의 노력이 부질없이 그는 영정사진 속에 갇힌다. 영정사진은 그 사람의 죽음의 마지막 기록인 동시에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역설적 매체이다. 영정사진 속의 정원의 웃음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슬픔을 상징한다. 정원의 운명을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낸 장면 하나가 있다. 카페 안에서 정원이 창밖의 다림을 손가락으로 만진다. 운명이라는 유리에 갇힌 정원의 마지막 손짓,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투명한 유리창은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날카롭게 다림과 정원을 갈라놓았다. 나는 가끔 사진이 유리창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은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과거의 기억을 보여준다. .. 2025. 2. 6.
할리우드 배우의 잃어버린 소통을 찾는 여정 위스키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할리우드 영화배우 밥(빌 머레이)은 생소한 일본문화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밥이 타고 있는 리무진 바깥의 풍경은 시차만큼이나 이질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늦은 밤에 갖가지 총천연색의 네온사인과 커다란 전광판으로 완전히 도배한 동경은 할리우드나 뉴욕과는 사뭇 다르다. 그를 맞이하는 일본인들의 환대는 왠지 모를 '낯선' 감정이 가슴 속에 묘한 동선을 그린다. 알아듣기 어려운 일본식 억양의 영어로 말을 걸고,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때론 허리를 숙여서 인사로 응대한다. 호들갑스러운 환대와 점잖은 친교의 표현이 묘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밥은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다. 사진작가와 결혼 후 남편을 따라서 일본으로 여행 온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답답한 일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 2025. 2. 6.
영화 사이드웨이가 전하는 포도주와 인생의 비유 우리 부부의 모처럼 영화 관람도 제목처럼 샛길로 샜다. 집에서 나설 때는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애비에이터'를 보기로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네버랜드를 찾아서'로 마음을 바꿨다. 결국, 표를 살 때는 우리 앞에서 서 있던 미국 아줌마들을 따라서 '사이드웨이(Sideways, 2004)'를 골랐다. 무슨 이유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두 시간 동안 두 남자의 샛길을 유쾌하게 마음껏 보고 즐겼다. 그 샛길에서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유머와 삶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를 만날 수 있었다. 우선 우리를 샛길로 인도해준 앞의 두 아줌마에게 감사드린다.샛길로 빠져버린 두 사내말 그대로 두 사내는 정상적인 생활을 벗어나, 일주일 동안의 일탈에 빠진다. 포도주에.. 2025. 2. 5.
영화 러브레터, 시간과 사랑의 교차점 이와이 슌지가 감독한 '러브레터'는 시간의 역류를 꿈꾸는 한 여인이 보내는 편지에서 사건이 발단된다. 와타나베 히로꼬는 애인의 졸업 사진 속에 적혀있는 주소를 보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의 대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집을 지키고 있는 중학생인 후지이 이즈끼이다. 시공간상으로 놓여있는 차이를 넘어서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런 시도은 헛된 꿈이다. 꿈을 꾸듯이 편지를 쓰는 마음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 러브레터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에서 러브레터는 사랑하지만 전하지 못하는 짝사랑의 대상으로 향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짝사랑이라는 식지 않는 주제를 담담하게 다룬 고전이 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러브레터는 두 개다. 첫 번째는 .. 2025.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