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과감한 캐릭터의 귀환, 탑건

영화관에 가본 지가 거의 3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주말에 가끔 아내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마음껏 웃고 떠들던 경험이 너무나 그리웠다. 큰마음을 먹고 극장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이제 코로나 규제도 많이 풀어졌고 확진자 숫자도 높지 않으니까. 그렇게 욕심을 내서 찾은 영화가 무려 36년 만에 만든 탑건 속편이었다. 원작 스토리도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코로나 이전의 취미를 다시 즐길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극장은 한산하다 못해 스산했다. 직원도 크게 줄었고, 음식 판매대도 닫은 곳이 많았다. 우리가 거주하는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된 지 한참이 흘러서 그럴까? 코로나 여파가 가시지 않은 탓일까? 주중 낮 관람이라 그럴까? 150여 석이 넘는 영화관에 10명 남짓 사람만이 듬성듬성 떨어져 앉아있었다.

우리는 극장에서 늘 먹던 팝콘과 콜라도 생략하고 마스크로 무장하고 지정된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지겨울 정도로 많았던 광고도 확 줄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자체가 고마웠다. 집안 소파에서 TV로 보는 게 아닌,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만족감이 느껴졌다. 집에서 콘서트도 보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다른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경험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거 액션영화의 화려한 귀환

‘탑건: 매버릭’은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무자비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로 손색이 없었다. 전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스릴 넘치는 비행 장면도 넉넉히 보여줬다. 컴퓨터 그래픽이 과도하게 들어간 최근 영화와 달리 직접 촬영한 장면이 많아서 왠지 모를 청량감마저 들었다. 세련된 촬영과 편집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액션으로 추억 속의 영화가 돌아왔다.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여행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전편과 겹치고 대결하고 있다. 속편의 운명은 어쩔 수 없다. 원작의 영광이 지나치게 컸었던가. 전편을 오마주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피트 미첼(매버릭, 톰 크루즈)이 전투기와 속도 경쟁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은 예전의 로맨티시즘적 영웅의 귀환했다는 선언같이 느껴졌다. 드론이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매버릭은 과거의 전투기 파일럿을 소환한다. 특수 효과가 스턴트 촬영을 대체하는 요즘 영화계에 대한 반발일까? 비행 훈련까지 받으며 촬영했다는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니, 왜 영화에서 과거 액션 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36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영화 ‘탑건: 매버릭’

과거의 촬영 기법을 쓰긴 했지만 촌스럽지 않았다. 6K 아이맥스로 제작했고, 전투기 조정석에 직접 카메라를 설치해서 몰입감을 높였다. 다분히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지만, 그렇다고 향수에만 의존하지 않는 적절히 업그레이드된 액션 영화로 재탄생했다. 탑건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멋진 영상으로 보여줬다.

코로나 폭격으로 초토화된 영화관에서 80년대 영화 속편을 보며 모처럼 옛 감성에 푹 빠졌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하늘 위로 치솟는 듯했다. 세월이 상당히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매력이 있다. 80년대 박스오피스를 석권했던 톰 크루즈가 돌아왔다. 탑건의 매버릭은 배우 톰 크루즈의 분신이다.

매버릭은 비행하는 게 너무 좋아서 출세하지도, 결혼하지도 않았다. 톰 크루즈도 액션 영화를 계속 찍으며 배우로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이가 들었으니 중후하고 폼나는 역할을 맡아도 되지만 직접 연기하는 액션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년이 되었어도 액션 영화를 꾸준히 찍는 배우는 리암 리슨을 빼곤 톰 크루즈가 독보적이다. 스턴트맨과 직접 촬영이 중심이 된 영화 포맷이 아직도 건재함을 이 영화로 확인할 수 있다.

매버릭은 중력을 거스르는 속도로 비행하길 즐기는 속도광이다. 그는 속도에 중독되어 마하 10으로 질주하다가 전투기를 폭파하는 사고를 내기도 한다. 비행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캐릭터다. 요즘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주인공들처럼 듣기에 그럴싸한 멋진 말들을 쏟아내지 않고,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점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마하 10의 속도로 활강하는 전투기가 주인공이다시피 한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제작과정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제리 부룩하이머의 제작으로 2010년부터 속편이 기획되었지만, 2012년에 토니 스콧 감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영화가 엎어졌다. 그 후,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2017년에 제작에 합류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다. 시나리오도 수정되어 6K 아이맥스 촬영까지 마무리되어 2019년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재촬영과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영화의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우여곡절끝에 2022년이 되어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개봉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추락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날아다니는 매버릭의 비행이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버티는 강인함이 이 영화의 메시지이다. 전작에서 아이스맨으로 출연한 발 킬머도 속편에 등장하는데 그의 출연도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발 킬머는 후두암으로 목소리를 잃어버렸지만, 병을 이겨내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컴퓨터로 재생된 목소리로 연기하는 그를 보는 것도 감동이었다. 아이스맨과 매버릭은 원작에서 전투 비행 경쟁자로 다투던 사이었지만, 30여 년이 흐른 후 문자를 주고받을 만큼 돈독한 우정 관계로 발전한다. 서로를 챙겨주는 우정을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매버릭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탑건 비행사들을 훈련하는 교관의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비행 훈련 기술만 뛰어나다고 훌륭한 교관이 되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 관리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매버릭이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이미 전작에서 확인된 바 있다.

훈련 중에 사고를 당해서, 친구이자 비행 파트너인 구스(앤소니 에드워드)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으로 탑건이 되기를 포기하려던 그였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다시 탑건의 길로 돌아왔다. 그 후 비행 중에 정신적 공황 상태로 다시 위기에 처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공중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는 속편에서도 한 치의 의심이나 주저함도 없이 미션을 수행한다.

탑건 (그림: 류정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행동해.” 매버릭이 비행사를 훈련하며 조언한 말이다. 비슷한 말을 원작에서도 했었다. “하늘 위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어. 생각하는 순간, 죽는 거야.” 이 말이 매버릭을 살아있게 한 본질이었다. 그의 말은 행동의 결과와 상황에 사로잡혀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다. 속편을 제작하는 과정에 놓여있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후회하고 시간을 보냈더라면 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매버릭의 캐릭터처럼 과감하게 만들어진 이 영화는 무려 10억 달러가 넘는 흥행 기록을 깨뜨리고 있다.

일관된 고집으로 버티는 캐릭터, 매버릭은 전쟁과 질병으로 불확실해진 세상에도 살아남았다. 86년은 적이 뚜렷한 냉전기였다. 그러나 2022년에 개봉한 이 영화에서는 적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적시하지 않는다. 적기에 탄 파일럿의 얼굴도 드러나지 않고 적의 실체도 모호하게 처리된다. 적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인 ‘러시아’로 짐작할 뿐이다.

어쩌면 실체를 알 수 없는 적들과 싸우느라 지친 지금의 세상에서 매버릭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승자와 패자로 뚜렷하게 갈라지지 않는 작은 전투가 이어지는 현실의 세계 속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앞에 나타난 매버릭의 행동력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쉽게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끈질기게 돌아온 매버릭처럼 살아 보고 싶다. 노스텔지어에 빠져 과거에 좋았던 시절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는 실천하는 존재의 귀환이라서 그렇다. 매버릭의 비행은 전쟁이 아닌 스포츠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 세계에서는 애국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하늘을 고집스럽게 날아오르는 매버릭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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