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토론할 때 가장 많이 취하는 동작이 있다. 말하는 중간에 양손을 들어서 양쪽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두 번 꼬부리는 것이다. 처음에 난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서 쳐다보기만 했다. 그 손동작은 문장기호 따옴표("")를 형상화한 거라고 들었다. 가끔 그런 손동작 대신에 인용하거나, 강조하는 말 앞에 'quote, unquote'라고 붙이기도 한다. 인용부호가 일상의 대화에도 쓰이는 걸 보고, 문화적 차이라는 걸 느꼈다.
뉴욕타임스나 기타 지역신문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코너가 오늘의 인용문이다. 신문들은 그날의 기억할 만한 사건이나 말 가운데 추려서 보여준다. 가끔 명언이나 충고도 있지만, 위선적인 정치인들의 말도 그대로 인용된다. 미국의 독특한 인용의 문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해석이나 의견도 더하지 않고 직접 인용해서 판단해보라는 것이다.
미국 친구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으면, 메일의 내용보다 자신들이 인용하는 문구가 더욱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흔하다. 가끔 나도 그런 게 신기해서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자주 인용문을 갈아줄 만큼 쉽게 몸에 배지 않는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사전이 바로 인용 사전이다. 유머 인용, 여성 인용, 철학자 인용, 역사 인용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미국인들이 지적 재산권에 민감한 이유도 이렇게 철저하게 인용에 익숙한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거 같다. 미국이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에 따라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문화라면, 한국은 집단적 사고방식으로 관습이나 지식을 철저히 공유하는 문화다. 이런 차이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어는 철저하게 주어나 목적어를 분명히 밝히는 경향이 있다면, 한국어는 주어를 보통 생략하는 경향이 강하다.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를 전제로 하여 말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인용 문화는 학술적인 글쓰기의 경우에 철저하게 지켜진다. 신경쇠약에 걸릴 만큼, 순수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면 반드시 출처를 밝혀서 인용해야 한다. 대충 통념상으로 미루어 주장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래서 영어로 논문을 쓰다 보면 인용을 빼놓고는 글을 완성하기 어렵다. 인용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 표절이 아니냐는 공격을 당하기 쉽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소설 같은 문학적 상상력에 맡기는 글이 아니라며, 누가 이런 생각을 최초로 했는지에 관해서 점점 민감해진다. 논문을 쓰다 보면, 직접 인용, 간접 인용으로 채워지는 부분과 나의 주장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일종에 과거의 사람들과 내 생각이 논문을 통해서 대화를 나눈다. 인용이 생활화된 미국의 문화는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다.
가끔 이런 인용 문화가 가져다 주는 장점도 있다. 이야기가 불리하게 흘러갈 때, 남의 인용 뒤로 숨어버릴 수 있다. 그거 제 생각이 아니라고. 남의 생각을 빌어서 한 말이니까 그만큼 책임도 덜 할 수 있다. 내가 한 말이라면 그 책임이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어버리지만, 인용이라면 조금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으나 안전한 대화의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화권의 미국 사회에서 타인의 의견을 만나는 순간이 바로 인용할 때다. 전체주의적 사고를 대체로 싫어하지만 미국 문화에도 타인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이 하는 생각이지만 이건 함께 나누면 좋을 거 같아. 그런 태도를 미국 문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