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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 소비주의 종말을 고함

by 알기쉽게 해설가 202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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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E'는 전 세계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청소 로봇 월-E는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며 살아간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 등장한 '윌 스미스'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지구가 멸망하고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쓰레기만 남아 뒹군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레기를 뒤져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와서 애완동물과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은 윌-E나 윌 스미스나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윌-E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고, 애완견 대신 바퀴벌레와 산다.

소비 사회가 양산한 지구 쓰레기

윌-E의 일상은 단순하고 지루하다. 쓸모없는 쓰레기를 모아서 압축해 블록으로 만들어 한쪽에 쌓아둔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도시의 마천루는 윌-E가 조성한 거대한 쓰레기 블록으로 조립한 건물이다. 인간이 소비하고 마구 버린 쓰레기 탓에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이 영화는 소비를 조장하는 소비주의가 결국 세계를 멸망하게 한 원인이라는 은유를 담고 있다.

 

무차별 소비로 쓰레기장으로 변한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옥이 된다. 인간은 지구를 복원하기보다 또 다른 소비를 선택한다. 로봇 노예가 가득한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떠돌기로 작정한다. 일어나서 잠드는 순간까지 로봇이 모든 시중을 다 들어주는 소비주의 천국을 건설했다. 걷기도 귀찮아진 인간은 휠체어에 의존해서 이동한다. 이런 생활이 몇백 년이나 지속하여 인간은 돼지처럼 살이 쪄 소비만 하는 동물이 되었다.

 

영화 월 E 포스터

 

'월-E'는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라서 '블레이드 러너'처럼 암울한 미래로 보여주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공상과학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커다랗고 귀여운 눈망울을 간직한 월-E는 쓰레기장에서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하면서 외롭게 살아간다.

 

소비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장은 월-E에겐 일터이며 생활의 공간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월-E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어 거의 무성영화에 가깝다. 온종일 쓰레기를 처리하고 모래폭풍이 몰려오면 창고로 돌아와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 불을 켜고 뮤지컬 영화 '헬로, 돌리!"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태양열로 작동하는 로봇이기 때문에 가끔 햇빛으로 충전도 해줘야 한다. 모래폭풍을 빼면 굉장히 평화로운 삶이다.

청소 로봇의 모험으로 시작된 지구 복원 

평화로운 월-E는 사랑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식물을 찾아 지구에 온 로봇 '이브'를 보고 첫눈에 사랑하게 된다. 월-E는 이브를 쫓아서 지구인이 가득한 우주선으로 잠입한다. 우주선에서 월-E가 본 것은 풍요로운 물질과 잘 통제된 작은 지구였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점은 바로 쓰레기를 우주선에 담아둘 필요 없이 우주에 버리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700년 동안 우주선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로봇을 노예처럼 부리며 살지만, 인간은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 자유조차 없다. 이 우주선은 '아이, 로봇'이나 'A.I.'처럼 로봇이 인간을 모조리 통제하는 숨 막히는 감시사회다. 지구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로봇들과 월-E는 의도하지 않은 싸움에 휘말려 든다. 로봇이 감시하는 우주선은 끔찍하기만 한 사회가 아니다.

 

원하는 대로 먹고 자고 물건을 마음껏 소비할 수 있는 소비주의의 천국이다. 지구를 떠난 인간이 마음껏 소비하며 살 수 있게 설계한 미래 사회다. 게다가 소비주의 폐해인 쓰레기도 우주선 밖으로 내다 버리니까 지구처럼 망할 걱정도 없다. 하지만 우주를 오염시키고 돌아다니는 액시엄 우주선은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이 만든 괴물이다. '환경이야 어떻게 되든지 내 알 바 아니라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은 언젠가 우주마저 파괴하고 말 것이다. 그 후에는 또 어디로 떠나야 할까?

 

환경파괴가 배경이 된 동화의 주인공이 쓰레기장 로봇인 건 당연한 캐스팅이다. 장애인 물고기가 주인공인 '니모를 찾아서'를 감독한 앤드류 스탠튼은 '월-E'에서도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세계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동화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소비 욕망이 남긴 쓰레기 치우는 뒤치다꺼리하는 700살 윌-E의 운명을 생각하면 참 딱하다. 인간을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쓰고 속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은 식물을 발견한 월-E를 따라서 지구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한다. 파괴된 지구를 살리고 다시 문명을 세울 수 있을까? 선장은 '기계에 의존해 연명하기 싫어.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외친다. 기계 의자 없이 걷지도 못하게 된 인간들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각성한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마구 쓰고 버리는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고 과학기술로 환경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소비주의, 시장주의, 신자유주의 등 가치관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월-E'의 세계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 있다. 소비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를 아름답게 풍자한 월-E는 어른들이 꼭 봐야 할 동화다. 월-E와 이브가 손을 잡듯이 함께 힘을 모아서 공동체를 살리려는 손길이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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