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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도시의 창, 나이트호크스로 살펴본 미국인의 정서

by 알기쉽게 해설가 202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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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현대 회화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에드워드 호퍼는, 겉보기엔 평범한 도시 풍경 속에서 인간 내면의 고요한 불안과 단절감을 포착해낸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나이트혹스(Nighthawks)」는 단순한 야경이 아닌, 산업화와 도시화가 초래한 인간 소외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 미국 사회의 정서를 반영할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텍스트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 작품이 가진 미학적 특징과 사회적 함의를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불빛 아래 고립된 도시인의 초상

나이트호크스(Nighthawks)는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가 1942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었던 식당을 모델로 그린 작품입니다. 시간은 새벽 2~3시쯤 되었을 것이고 24시간 영업하는 식당 안 손님은 커플로 보이는 남녀와 남자 한 명뿐입니다. 마치 수족관처럼 식당은 형광등 빛으로 환하게 빛나지만 정작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식당 바깥의 거리도 텅 비어서 적막감을 한층 높이고 있죠. 전체적으로 활기차기보다 쓸쓸한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정경입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스



미국 대도시 늦은 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싸구려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는 청춘들은 어느에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에드워드 하퍼는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인의 고독이나 절망감을 담백하게 표현했습니다. 깊은 밤, 불이 꺼지지 않은 식당 안에서 마주 앉은 몇 명의 사람들. 그들은 가까이 있지만,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나이트호크스(Nighthawks)」는 이처럼 침묵 속에 깃든 고독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도시의 불빛이 외로움을 덮어주지 못하듯, 호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대인의 내면을 차분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이 작품은 단지 과거의 미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가 느끼는 고립과 정서적 거리감을 예술로 승화시킨 깊은 공감의 기록입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손님은 모두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커플과 남자 사이에 전혀 교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커플도 그다지 친밀해 보이지 않죠. 이 둘은 커플이 아니라 여기서 만난 사이일지도 모르겠네요. 종업원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 손님에게 살갑게 대하지도 않습니다. 지나치게 환한 형광등은 이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고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고 은둔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작품 속 대부분의 여인은 배우이자 화가였던 자신의 아내 죠세핀(Josephine)을 모델로 삼아 그렸습니다. <나이트호크스>의 여인도 역시 죠세핀이 모델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호퍼 자신도 손님으로 등장합니다. 호퍼는 고독한 현대인을 단지 관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정이입한 것입니다. 어쩐지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고독했던 삶을 살며시 드러낸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인 <밤의 매(Nighthawks)>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올빼미같은 사람을 뜻합니다.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이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대도시의 고독이라는 주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그림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 그림을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과 더불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림일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공감 - 나이트호크스의 현대적 해석

고트프리드 헬른바인(Gottfried Helnwein)은 호퍼의 그림을 패러디하여 <망가진 꿈의 거리>(Boulevard of Broken Dreams)을 그렸습니다. 손님과 종업원을 제임스 딘, 마를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험프리 보가트로 바꿨습니다. 모두 한때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요절하거나 비극적인 삶을 산 스타들이었죠. 헬른바인의 작품은 최고의 연예인이 느끼는 고독에 초점을 맞췄지만 호퍼의 주제의식과 분명히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고독한 인간이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영화광이었고 그의 많은 그림들은 영화 스틸사진과 비슷합니다. 특히 이 그림은 30년대 느와르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아 미래의 르와르를 상상하며 블레이드러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독일 감독 빔 벤더스는 이 그림은 카메라의 시점으로 그려져서 아주 매력적이라고 평했습니다. 영화적 현실이 담겨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퍼의 다른 그림 속 인물들도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처럼 외롭고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나이트호크스를 패러디한 미드 CSI
나이트호크스를 패러디한 미드 CSI

 

미드 CSI가 호퍼의 그림을 패러디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어두운 범죄 연구실에서 싸늘한 시체를 다뤄야하고 고독하게 증거와 범인을 찾아야 하는 CSI 멤버들은 하퍼가 그린 현대인의 고독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시체를 가운데 두고 고독하게 바깥을 응시하는 CSI의 멤버들을 담은 포스터는 절묘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교감이 전혀 없는 이들은 고독하다 못해 화가난 듯한 표정입니다. 마치 그걸 알아달라는 듯 몇몇 인물은 도발적으로 카메라를 쳐다봅니다.

 

호머 심슨의 고독을 표현한 패러디 나이트호크스
호머 심슨의 고독을 표현한 패러디 나이트호크스

 

인기 만화시리즈 <심슨>도 <나이트호크스>를 패러디했습니다. 식당이 도너스 가게로 대체되었죠. 도너스는 경찰이 잠복근무를 할 때 즐겨먹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손님 중 한 명은 경찰입니다. 호머도 산더미처럼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도너스를 마구 먹습니다. 호머의 고독한 심정을 잘 표현한 장면이라 할 수 있죠.

<70년대쇼>(That 70s Show)에서 에릭의 아빠, 엄마인 레드와 키티가 결혼기념일에 서로 다투고 난 후, 호퍼의 그림에서 나온 것 같은 식당에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글렌게리 글렌로즈>에서 고독한 두 인물이 들어가는 식당도 비슷한 생김새입니다. 그 외에 만화, 음반, 포스터 등으로도 패러디되어 더 많은 대중들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나이트호크스>가 어떻게 대중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하퍼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예술로 끌어올려서 그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단지 대도시인이 느끼는 고독만이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이죠. 그는 가장 친숙한 공간을 낯선 예술적 공간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밋밋하고 평면적인 공간 속의 사람들이 갑자기 복잡한 과거와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죠.

 

호퍼, 고독을 그리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로, 도시와 인간의 고독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유명합니다. 그는 일생 동안 상업 미술과 회화를 병행하며, 단순한 구도 속에 깊은 정서를 담아냈습니다. 특히 고요한 분위기와 강렬한 빛의 대비, 고립된 인물 표현이 특징이며, 대표작으로는 「나이트혹스」, 「선룸」 등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뉴욕주 나아크의 비교적 풍족한 상인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욕예술디자인학교에서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스승 로버트 헨리는 호퍼에게 세상을 뒤흔들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하기를 가르쳤습니다. 몇 차례 유럽을 방문한 호퍼는 특히 현실주의와 고흐 등 인상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화풍은 이 시기부터 형성되었습니다.

그는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포스터 그리는 것으로 성공하였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회화 그리기에 계속 매진했습니다. 그는 유화뿐 아니라 에칭 판화와 수채화도 자주 그렸습니다.

그는 미국의 일상생활을 주로 그렸습니다. 주유소, 집, 식당, 시골풍경, 도시의 텅빈 공간, 건물 안의 사람들이 주된 주제였습니다. 그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한 단면을 잘 포착한 화가로 유명하다. 호퍼는 누구나 지나치기 쉬운 지극히 미국적인 공간에 천착하여 독자적 예술로 형상화했습니다. 그가 포착한 20세기 중반의 현실은 21세기 현대인에게도 적용됩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21세기의 외로운 인간들에게도 공감하는 여전히 매력적인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발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문화와 예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영화, 광고, 사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인용되며 현대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각적 언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더욱 부각된 인간의 고립감은 「나이트호크스」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감정과도 깊이 연결시켜줍니다.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가 모두 한때 느끼는 고요한 밤의 쓸쓸함을 정직하게 담아낸 시각적 명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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