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미드 매드맨(Mad Men) 시리즈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한국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미드지만, 60년대 미국 광고 산업 종사자들의 삶을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다룬 수작이라서 이 글로 소개합니다. 매드맨은 2007년 케이블 채널 AMC 네트위크에서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시즌 7까지 92 에피소드로 제작되어서 무려 16개의 에미상과 5개의 골든글로브를 수상했습니다. 미드 소프라노로 유명한 매튜 와이너가 야심 있게 기획한 1960년대 광고계를 다룬 시대극 드라마입니다.
존 햄이 연기한 주인공 돈 드레이퍼(Don Draper)는 광고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 성공을 연이어 이루며 승승장구합니다. 그의 삶은 복잡한 문제로 가득 찬 난장판입니다. 가난한 창녀촌에서 자란 딕 윗만은 자신의 지긋지긋한 바닥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 전쟁 중에 돈 드레이퍼라는 장교의 이름과 신분을 훔칩니다.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던 사람이 광고업계에 들어가 성공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광고회사의 중요한 일원이 됩니다. 시즌 중에 그의 신분이 탄로가 날 뻔하지만 흥행 광고를 만들기만 한다면 문제될 게 아니었죠. 광고가 상품을 매개로 환상을 파는 매체라고 생각하면 거짓말과 상통하는 면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기 치는데 도가 튼 돈 드레이퍼가 광고계에서 스타가 되는 건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사기꾼 딕 윗만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매력남 돈 드레이퍼로 멋지게 변신해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 광고계에서 이름을 드날립니다.
마지막 시즌에서 돈 드레이퍼가 속한 광고회사가 맥캔 에릭슨(McCann Erickson)이란 큰 회사에 합병됩니다. 큰 회사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돈 드레이퍼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 여행의 종착지는 바로 캘리포니아 해변에 있는 명상센터였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돈 드레이퍼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건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며 함께 슬퍼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돈 드레이퍼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은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돈 드레이퍼가 광고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코카콜라 광고를 만들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971년에 제작된 이 코카콜라 광고에는 묘하게 60년대의 문화 코드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격동적이었던 60년대의 인권운동, 히피, 평화주의, 다문화주의가 그 광고에 나오는 인물들로 하나씩 대표합니다. 히피풍의 옷을 입은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들이 해변의 언덕에서 손에는 콜라병을 들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노래 부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저항의 시대라는 60년대가 보여준 가치들을 뭉뚱그려서 코카콜라 상품을 파는 데 잘 이용한 광고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 속에서 격렬했던 사회운동은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합창하는 군중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명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은 돈 드레이퍼는 광고가 의도했던 대로 콜라 한 병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를 발견했을 수도 있습니다. 콜라 한 잔은 공감의 시간입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이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에 숨 막히는 뉴욕 맨해튼의 반대되는 공간으로 설정된 캘리포니아 해변은 여유와 느긋함을 상징합니다. 물질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광고의 치료법으로 명상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정반대되는 가치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매드맨 시리즈는 막을 내렸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충돌하듯이, 현란한 상품에 중독되는 것과 마음을 비우는 명상도 서로 갈등을 빚습니다. 그러나 코카콜라 광고의 세계에서는 어떤 갈등도 없이 화해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광고가 상상하는 세계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짓말 같은 세상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돈 드레이퍼는 꿈 같은 세계로 인도하는 최고의 안내자입니다. 그가 명상하면서 살짝 웃음을 머금은 이유는 무엇일지 알 수 없지만, 어렵고 힘든 현실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그가 늘 그랬듯이 허구의 세계로 도피하는 길입니다.
현실의 도피는 콜라처럼 달콤하지만, 콜라 거품처럼 쉽게 꺼질 수 있습니다. 돈 드레이퍼는 기나긴 자동차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돌아와 역사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만들게 된다. 부디 잠시일지라도 꿈과 위안을 줄 수 있는 광고의 세계가 그가 살아야 할 현실입니다.
소중한 가치를 상품 파는 데 이용하는 현실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처럼, 돈 드레이퍼의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콜라 한 잔이라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요즘의 현실을 생각할 때, 여전히 효과적인 광고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광고가 심각한 사회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고 단칼에 내치기에는 삶이 너무 팍팍해서 비록 속임수라도 그런 관심이라도 아쉬운지 모르겠습니다.
백인, 흑인, 동양인이 바닷가 해변에서 코카콜라로 하나 된 세상이 매드맨의 결말입니다. 짜릿한 탄산수는 현실 속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줍니다. 존 햄이 연기한 돈 드레이퍼가 등장한 매드맨의 세계는 광고로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속고 속이는 현대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거짓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어두운 과거를 벗어나 화려하게 비상할 수만 있다면요. 광고 속에선 뭐든지 가능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