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같이 봐도 좋고, 혼자 봐도 기분 좋아지는 영화가 있어요. 가볍게 웃고 싶을 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때론 가슴이 설레기도 하죠. 바로 로맨틱 코미디! 줄여서 ‘로코’라도 하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있자면, 달달한 로맨스에 유쾌한 상황들이 곁들여지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져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보고 있으면 또 보고 싶어지는 영화들로 순위없이 뽑아봤어요.
설레고, 웃기고, 마지막엔 마음 따뜻해지는 작품들이에요. 이 영화들은 기분이 꿀꿀하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보게 되는 중독성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텔레비전에서 재방송을 하면 그냥 앉아서 넋놓고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한답니다. 혼자서 보기도 하고, 아내랑 같이 보는 날도 있습니다. 연애의 설렘을 다시 경험하는 순간도 있어요. 오랜 결혼 생활로 사라진 줄 알았던 오묘한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 게 신기합니다. 자 그럼 제가 선정한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을 살펴보시겠어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1989)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갈등을 다룬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영화를 따라올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바로 노라 에프론 각본, 로브 라이너 감독의 명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입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교과서라는 찬사가 붙을 만큼 남녀의 미묘한 연애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가능할까?' 이 단순한 질문 하나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인생을 따라가며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를 천천히 보여줍니다. 해리와 샐리는 처음엔 너무나 달라서 계속 부딪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이가 매력으로 바뀌는 과정이 놀랍도록 현실적입니다.
각본가 노라 에프론과 감독 로브 라이너의 솔직하고 끈끈한 동료 관계가 이 영화의 기초였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해리는 라이너였고, 샐리는 에프론인셈이지요. 둘은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 등 같이 호흡을 맞춰서 영화를 계속 만들었습니다. 샐리가 레스토랑에서 가짜 오르가즘을 느끼는 장면도 둘이 남녀의 차이를 토론하며 나온 대화 주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친구가 된 각본가와 감독 사이의 우정은 사랑 못지 않았습니다.
해리와 샐리는 대학교 졸업 후,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처음 만납니다. 처음에는 서로 너무 달라 불편하기만 했던 두 사람. 그러나 이후 우연히 다시 마주치고, 또 다시 마주치고, 결국 친구가 됩니다. ‘연인 아닌 우정’이라는 애매한 감정선 속에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게 됩니다. 그들의 관계는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흐릅니다. 하지만 정말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는 이 영화가 던진 수많은 질문 가운데 하나일뿐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남녀의 감정이 만나서 폭발합니다.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콤비가 보여준 로맨스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찬찬히 보여준 작품입니다. 12년에 걸친 우정이 사랑으로 서서히 변해가며 성장하는 드라마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 2001)
이 영화는 영국 소설가 헬렌 필딩이 인디펜던트에 연재한 칼럼이 그 시초였습니다. 칼럼에서 일과 사랑 사이에 갈등하는 여자의 감성을 유쾌하게 풀어냈습니다. 필딩은 칼럼에서 쓴 자신의 캐릭터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등장한 캐릭터를 절묘하게 섞어서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1996년에 출간합니다. 이 소설은 1500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영화 시리즈로 제작됩니다.
33살 싱글녀 브리짓 존스는 새해 결심으로 다이어트, 술 줄이기, 연애 성공하기를 다짐하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한쪽엔 나쁜 남자 ‘다니엘’(휴 그랜트)은 끼 많고 매력 있지만 불안하고, 다른 한쪽엔 ‘마크’(콜린 퍼스)가 무뚝뚝하지만 믿음직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엮이며 브리짓의 인생도 점점 꼬이기 시작합니다. 과연 브리짓은 자신답게 살며, 원하는 사랑도 찾을 수 있을까요?
브리짓은 말도 많고, 실수도 많고, 사회적으로도 그리 성공적이지 않은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한’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은근히 위로가 됩니다.
이 역할을 위해 10kg 넘게 체중을 늘리고 영국식 억양까지 익힌 르네 젤위거는 브리짓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인물의 심리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우산 들고 비 오는 거리에서 고백하는 장면, 속옷 차림으로 눈 오는 거리 뛰쳐나가는 장면 등등, 명장면이 정말 많습니다. 상황도 웃기고 대사도 찰지게 재밌습니다.
이 영화는 이상적이고 멋진 로맨스보다는 현실 연애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가슴 떨리는 순간을 잘 포착합니다. 일과 연애 어느 것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30대 여성의 감성을 헤아려준 드라마입니다. 웃으며 공감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세요.
노팅힐 (Notting Hill, 1999)
리차드 커티스가 각본을 쓰고 로저 미첼이 연출한 ‘노팅힐’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을 성찰하는 철학적 영화입니다.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였다. 나는 런던 노팅힐의 작은 서점 주인이었다." 이 간단한 소개만으로도 ‘노팅 힐’은 우리 모두의 로맨틱 판타지를 자극합니다. 평범한 남자가 스타 배우를 만나서 사랑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현실 속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커티스의 친구가 우연히 해롯 백화점에서 여배우를 만나서 사귄 일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안나 스콧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입니다. 반면, 휴 그랜트가 연기한 윌 태커는 조용한 런던 거리에서 여행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소박한 남자죠. 윌은 현실적인 고뇌와 낭만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입니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의 세계에 안나가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바뀝니다.
이 영화는 토스트를 먹는 장면처럼 평범한 순간들을 특별하게 느끼게 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스타에게도 일상의 소중한 순간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 있죠. 스타와 일반인의 신분 차이를 잊게 하는 일상 속으로 깊숙이 빠져드는 영화가 바로 노팅힐입니다. 영화 속 ‘노팅힐’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랑이 피어나고 흔들리는 감정의 공간입니다. 마켓, 서점, 골목, 공원… 모든 장소가 이야기의 감정을 지지해주는 일상입니다.
"잊지 마요. 저도 그냥 한 여자일 뿐이에요. 한 남자 앞에 서서,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안나의 대사는 심금을 울립니다. 안나는 수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 스타이지만, 한 남자한테 온전히 사랑받고픈 외로운 사람입니다. 마치 여행을 떠나듯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일상을 즐기는 순간이 소중합니다.
이 영화는 둘이 만나서 소박한 사랑을 나누던 노팅힐까지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영화 속 그 서점은 사라졌어도 그 자리를 대신한 다른 서점을 찾아서 로맨틱 코미디의 팬들이 끊임없이 방문합니다. 사랑에 대한 과한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있는 대로 보여주고 조건에 상관없는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웃고 울고,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시간이죠. 누군가와 함께 봐도 좋지만, 혼자 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해요. 오늘 밤, 이 중 한 편 골라보는 건 어때요? 설렘 충전 100% 보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