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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단편소설 추천 20편

by 알기쉽게 해설가 202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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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단편소설이 너무 읽고 싶어져서 도서관에서 단편 모음집을 빌렸습니다. 가람기획이라는 출판사가 평론가 53명에게 설문하여 현대 단편소설 20편을 묶어서 책으로 완성했습니다. 기왕에 설문하는 김에 100명을 채워서 했으면 어땠을까? 왜 53명일까요? 그 이유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아서 아쉽네요.

 

이 책에서 설명한 선정 기준에 따르면, 우선 평론가 20명에게 1차 목록으로 100편 정도 뽑았습니다. 그 목록을 다시 평론가 53명에게 돌려서 설문했습니다. 하지만 평론가 1명이 몇 편까지 뽑을 수 있는지 등 자세한 절차는 드러나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일 이런 목록을 뽑는 책임자였다면 아마도 1차 목록까지만 평론가들이 뽑고 나머지는 독자들을 상대로 설문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면 대중 독자들의 의견도 반영한 보다 종합적인 추천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은 평론가들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뽑힌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일반 독자들이 선정했다면 그 목록이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한국 현대문학 100년, 단편소설 베스트 20

한국 현대 단편소설 20 (빈도순)

  • 김승옥, 무진기행 (48)
  • 황석영, 삼포 가는 길 (46)
  • 이상, 날개 (42)
  • 김동리, 무녀도 (41)
  • 박완서, 엄마의 말뚝 (39)
  • 이청준, 눈길 (37)
  • 이문구, 관촌수필 (36)
  •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34)
  • 이문열, 금시조 (31)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30)
  • 김유정, 동백꽃 (27)
  • 오정희, 파로호 (27)
  • 현진건, 운수 좋은 날 (26)
  • 김동인, 감장 (25)
  • 황순원, 소나기 (25)
  • 임철우, 아버지의 땅 (24)
  • 손창섭, 비 오는 날 (24)
  • 서정인, 강 (23)
  • 김원일, 미망 (22)
  • 이태준, 복덕방 (20)

가람기획이란 출판사에서 청소년을 독자로 한 '문예교실' 봄 창간 기념으로 뽑아본 목록입니다. 선정된 작품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학성을 갖춘 이야기들입니다. 한 번씩 읽어보면 한국 문학사에서 왜 중요한 단편으로 인정받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1위로 선정된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1964년 사상계에 발표된 후 세간의 화제가 되어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고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무진은 가상의 도시로 세속적인 서울과 대비되는 안개가 그윽한 공간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서울과 무진 사이의 길 위에서 갈등하는 자아가 잘 표현되었습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운수 좋은 날', '엄마의 말뚝', '복덕방'은 이미 읽었고 틈나는 대로 몇 편을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역시 세월의 힘이 견디고 당당히 서 있는 단편작품들이라 그런지 다시 읽어도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탄탄한 문장력이나 깊이 있는 주제의식은 현대 한국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위의 목록에 선정된 소설 중에 못 읽어본 작품도 꽤 된다. 오정희의 '파로호'나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이나 서정인의 '강'은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편 소설 3편을 뽑아봤습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하근차의 '수난이대', 전영택의 '화수분'이다. 단편은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운수 좋은 날'은 죽은 어머니의 빈 젖을 빠는 아이 소리가 너무나 구슬프게 들립니다. '수난이대'는 전쟁 통에 다리를 잃은 아들을 업고 바들거리며 강을 건너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화수분은 추운 들판에 얼어 죽은 부부 사이에 놓인 아이가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단편 소설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단편은 간결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치 시처럼 짧지만 울림이 있는 단편은 오래도록 기억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손꼽은 단편을 하나씩 읽어보는 도전을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그려진 무진처럼, 여기에 선정된 단편을 읽는 시간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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