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이 그림을 한동안 집 안에 걸어 놓았던 적이 있다. 물론 진품은 시카고 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지만, 나는 뉴욕타임스에 실린 이 그림을 정성껏 오려내서 거실 벽에다 턱하니 붙여놓았다. 19세기 프랑스 교외의 강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을 그린 이 그림은 나에게 여유 있는 삶으로 다가왔다. 이 그림을 보는 동안 바쁜 일상의 피로를 잊고 잠시나마 휴식을 느꼈다.
후기인상파에 속하는 화가 조르주 쇠라는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꼬박 2년에 걸쳐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습작만 대략 60편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쇠라의 치밀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0년의 작가 생활 동안 오직 7점의 작품만 남겼다.
후기인상파 가운데 세잔과 더불어 쇠라는 과학적 방식의 회화를 추구하였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도구를 쓰듯 화가는 빛과 색채로 감정을 표현한다고 쇠라는 생각했다. 그는 붉은색이나 주황색으로 즐거움을 표현하고, 청색이나 녹색으로 슬픈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대표작 '서커스'에서 유쾌한 서커스단원을 그리는데 붉은색을 주로 썼다.

쇠라는 색점으로 대상을 그리는 점묘법을 발전시켰다. 점묘법은 한가지 색으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색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은 점으로 이뤄진 다른 색을 쓴다. 따라서 원하는 색감을 얻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을 해야 했다. 이런 점묘법은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도 적용되었다.
쇠라의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도 인물의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인물이 배경과 섞여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모호하고 나른한 풍경 속으로 사람들이 흩어져 보인다. 그래서 한편의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프랑스 센 강변 섬에서 여가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이 풍경처럼 다가온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한 공원(Old Deaf School Park)은 쇠라의 이 그림을 정원으로 재구성해서 만들었다. 현대적 여가 생활을 보내는 공간이 된 공원이 쇠라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쇠라의 그림은 이 공원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로 패러디되거나 재생산되었다.
뮤지컬 작곡가인 스티븐 손드하임은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뮤지컬 '조지와 함께 일요일 공원에서'를 창작했다. 쇠라의 증손자 조지가 미국에 살다가 파리를 방문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다.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도 1974년 1월호 표지로 쇠라의 그림을 패러디하였다. 쇠라의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원숭이와 산책하는 여인은 화제가 되었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 원숭이는 창녀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 여인은 창녀로 보였다. 플레이보이와 이 그림이 만나는 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미국 공영방송국 PBS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릿도 캐릭터를 총출동시켜 쇠라의 그림을 패러디했다. 이 그림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서미 스트릿의 캐릭터들이 느긋하게 강가에서 휴식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성인과 어린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림이 되었다.
미국 미네소타주 메가몰에서 이 그림은 '미네소타 피크닉'이라는 식당을 광고하기 위해 쓰인 적도 있다. 공원과 달리 이곳에 가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2006년 미국 위스콘신주 벌로이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토요일'이라는 행사의 홍보를 위해서 쇠라의 작품을 사진으로 패러디했다. 21세기 미국인의 모습으로 재현된 풍경도 재미있다. 상원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 사진 촬영이 이뤄졌다. 19세기와 21세기라는 시간적 차이는 있었지만, 강변에서 하루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삶의 여유가 주는 안락함은 시간을 초월한 가치임에 분명하다.
쇠라의 작품에 등장하는 공원과 더불어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일요일 오후라는 시간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일요일 오후의 한적한 시간이다. 일요일 오후는 오전에 교회를 다녀온 후 느긋하게 가족들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다. 여가가 늘어난 21세기라면 토요일이나 금요일까지 포함할 수 있다. 일터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개인적 시간'의 탄생은 이 작품의 주제 중 하나이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프랑스 교외의 센강변을 모델로 삼았다. 1884년 그랑드자트섬은 번잡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전원의 휴식처였다. 한때 공장지대였다가 지금은 공공 정원이 된 작은 섬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인들의 심신을 달래주고 있다. 19세기 부르주와 계급의 여가 생활을 상징하던 공원의 산책은 21세기 다양한 계급이 함께 누리게 되었다. 귀족이나 부르주와 계급에 한정되었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노동계급에도 열린 시대가 되었다.
이 그림은 어떤 특별한 힘이 있었기에 이상적인 여가 생활을 상징하게 되었을까?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달래주는 공간이 늘어날수록 이 그림은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질수록 그 공간에서 느꼈던 푸근한 경험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여가의 삶을 상징하는 그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