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맨(Mad Men) 시리즈가 드디어 끝이 났다. 한국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미드지만, 60년대 광고 산업 종사자들의 삶을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다룬 수작이라 소개한다. 주인공 돈 드레이퍼(Don Draper)는 광고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 성공을 거두지만, 그의 삶은 복잡한 문제로 가득 찬 난장판이다. 딕 윗만이라는 이름의 창녀촌에서 자란 한 남자가 자신의 바닥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 전쟁 중에 돈 드레이퍼라는 사람의 이름과 이력을 훔치게 된다.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던 사람이 광고업계에 들어가 성공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것 없이 이해된다. 광고가 상품을 매개로 환상을 파는 매체라고 생각하면 거짓말과 상통하는 면도 있다. 그러니까 사기 치는데 도가 튼 돈 드레이퍼가 광고계에서 스타가 되는 건 숙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시즌에서 돈 드레이퍼가 속한 광고회사가 맥캔 에릭슨(McCann Erickson)이란 큰 회사에 합병된다.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돈 드레이퍼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그 여행의 종착지는 바로 캘리포니아 해변에 있는 명상센터였다. 그곳에서 돈 드레이퍼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건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며 함께 슬퍼하는 일이었다. 자기밖에 모르던 돈 드레이퍼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은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돈 드레이퍼가 광고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코카콜라 광고를 만들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971년에 제작된 이 코카콜라 광고에는 묘하게 60년대의 코드가 다 들어가 있다. 격동적이었던 60년대의 인권운동, 히피, 평화주의, 다문화주의가 그 광고에 나오는 인물들로 대변된다. 히피풍의 옷을 입은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들이 해변의 언덕에서 손에 콜라병을 들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노래 부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저항의 시대라는 60년대가 보여준 가치들을 뭉뚱그려서 콜라를 파는 데 잘 이용한 광고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 속에서 격렬했던 사회운동은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합창하는 군중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진다. 다르게 보면,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은 돈 드레이퍼는 정말 광고가 의도한 대로 콜라 한 병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이었다. 치열한 경쟁에 숨 막히는 뉴욕 맨해튼의 반대되는 공간으로 캘리포니아 해변을 선정했다. 그리고 물질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광고의 치료법으로 명상을 제시했다. 이렇게 정반대되는 가치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매드맨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충돌하듯이, 현란한 상품에 중독되는 것과 마음을 비우는 명상도 서로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코카콜라 광고의 세계에서는 어떤 갈등도 없이 화해하고 있다. 쉽게 말해 광고가 투사하는 세계는 현실에 없는 거짓말 같은 세상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돈 드레이퍼는 꿈 같은 세계로 인도하는 최고의 안내자가 될 것이다. 그가 명상하면서 살짝 웃음을 머금은 이유는 무엇일지 알 수 없지만, 어렵고 힘든 현실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그가 늘 그랬듯이 허구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다.
현실의 도피는 콜라처럼 달콤하지만, 콜라 거품처럼 쉽게 꺼질 수 있다. 돈 드레이퍼는 기나긴 자동차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돌아와 역사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만들게 된다. 부디 잠시일지라도 꿈과 위안을 줄 수 있는 광고의 세계가 그가 살아야 할 현실이다. 소중한 가치를 상품 파는 데 이용하는 현실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처럼 돈 드레이퍼의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비록 콜라 한 잔이라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요즘의 현실을 생각할 때, 여전히 효과적인 광고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이 광고가 심각한 사회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고 단칼에 내치기에는 삶이 너무 팍팍해서 비록 속임수라도 그런 관심이라도 아쉬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