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만 누르면 배달

아마존 대쉬 버튼은 상품을 편리하게 계속 팔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긴 서비스다. 평소에 꾸준히 쓰던 물건이 떨어져서 이 버튼을 누르면 이틀 후에 물건이 배달된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이고 이보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서비스가 또 있을까? 그러나 이 광고를 보고 처음 드는 생각은 버튼이 가져다주는 편리함보다 지루한 일상이 지겹게 반복되는 한 편의 공포 영화 같다는 거였다. 똑같은 커피를 마시고, 똑같은 로션을 바르고, 똑같은 세제를 쓰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서랍을 열고 커피를 꺼내는 소리와 로션 뚜껑을 따는 소리와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일상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 그 반복되는 소리에 점점 지쳐가는 듯한 인상을 강렬하게 받는다.

광고의 취지는 이런 일상의 리듬을 깨지 말고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버튼이 도와준다는 거였다. 광고의 의도와 달리 권태로운 일상에 파묻혀 쓰러지기 직전의 피곤한 사람이 두드러진다. 새로운 커피 브랜드를 선택할 자유가 원천 봉쇄된 소비의 답답함에 숨이 탁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 가지 상품만 끊임없이 쓰는 사람이 바로 이 버튼이 목표로 삼는 소비자다. 그 삶이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할까. 언제든지 취소하는 게 가능하지만, 자꾸 버튼을 누르고 싶은 욕구는 또 어떻게 참아야 할지. 편리함보다는 지루함이 더 강하게 전달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 버튼을 누르면 일상의 반복이 아닌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면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장면이 바뀌면서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나 카리브해변으로 탈출하는 사람이 나왔더라면 통쾌한 결말이었겠지만, 그건 여행상품 광고에나 어울리는 이야기다. 씁쓸한 현실로 다시 들어가서 소비하는 기계가 되는 음울한 결말로 이끄는 무서운 버튼이 이 광고의 핵심이다. 집을 벗어나 슈퍼마켓으로 물건을 사러 나가는 수고를 덜어주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건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는 소비의 ‘감옥’이기도 하다.

아마존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이런 모습이라면 그건 소비의 자유가 없는 암울한 미래다. 집 안에서 모든 걸 살 수 있지만 기계와 교감하는 것이 전부인 비인간적 소비자들만 양산될 것이다.나는 아마존에서 책을 주로 사지만, 요즘도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산다. 왜냐하면, 점원이 진열한 책이나 서가에서 우연히 꺼낸 책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만나는 행운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에서 이런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온라인 쇼핑의 편리한 장점도 있지만, 검색을 통해서 찾을 수 있는 물건 이외의 것에 눈을 돌리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이 광고가 보여주고 기대하는 것은 소비의 욕구가 생길 때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인내심이다. 같은 물건을 계속 쓰는 데서 오는 지겨움도 이길 수 있는 그런 강한 참을성이 필요하다. 버튼만이 아니라 스마트폰도 복잡한 쇼핑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중요한 도구다. 대중교통이나 차를 타고 직접 쇼핑몰로 갈 필요 없이 물건이 집으로 찾아오게 하는 게 온라인 쇼핑이 지향하는 세계다. 이제 아마존으로 식료품도 배달해주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니 그 미래도 머지않았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소비의 리듬을 깨지 않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굴러가는 안락한 세상이 펼쳐진다. 이 광고는 그런 미래의 모습을 압축해서 미리 보여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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