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 재즈페스티벌 단상

이 글은 원래 작은 논문으로 쓸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가벼운 블로그 글로 바꿨다. 축제에 가보지 못했고 인터뷰도 할 수 없어서다. 인터넷 홈페이지, 기사, 동영상, 블로그 글을 통해서 얻은 것을 바탕으로 정리해봤다. 자라섬 재즈 축제가 많은 사람이 참여한 성공적인 축제로 평가받고 있지만, 재즈가 국내에서 아직 대중적인 장르가 아닌 탓에 기사나 자료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지산 록 페스티벌 같은 행사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즈 관련 축제 가운데 꾸준히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가지는 행사가 되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2012년에 9회의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벌써 10회를 맞이한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자라섬에서 재즈를 주제로 축제를 유치한다는 것은 특이한 조합이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가 아닌 가평에서 민요나 가요가 아닌 낯선 재즈라니. 가평 하면 잣이 아닌가. 지역 축제하면 흔히 특산물이나 공예품을 먼저 떠올리거나 전통과 연관 있는 행사가 떠오른다. 그러나 축제가 반드시 전통에 한정해서 행사를 치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전통과 외래문화의 구별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가평 자라섬이 재즈라는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축제의 장을 마련한 것은 세계화의 모습이다.

자라섬은 이제 한국 속에서 재즈를 알리는 재즈의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재즈라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 모여서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재즈 팬으로서 한국에 가게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연구자로서도 재즈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 일상의 답답함을 벗어나 사흘 동안 재즈에 푹 빠져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축제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탈의 욕구는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자료를 찾아다니다 우연히 제8회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광고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텔레비전 광고로 보이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한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아직 충분한 재즈 팬을 확보하지 못한 환경에서 재즈를 전면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보였다. 이 광고에서 재즈는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데이트 여행,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가족이 떠나는 소풍, 외국인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 등을 자라섬 재즈 축제에서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무래도 낭만이란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재즈 팬을 대상으로 광고를 만들었다면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영상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내 재즈 팬이 늘고 있긴 하지만 그들만으로 이 축제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2000년대 들어서 지역축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바람에 자라섬 재즈 축제가 경쟁해야 할 대상이 많아졌다. 특화된 주제가 없는 축제는 쉽게 사라지기 쉽다. 이런 지역 축제의 특징은 주로 지역 자치단체의 지원과 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규모의 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참여자의 숫자 경쟁이 이뤄진다. 공연 티켓만 팔아서 축제를 이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기 전까지는 지역단체나 기업의 후원은 필요하다. 2012년에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을 다녀간 사람은 23만 명이 넘어섰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표축제로 3년 연속 수상했고, 국/도비를 합쳐 2억 2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직접 자라섬 재즈 축제에 가본 사람들의 경험은 블로그 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로 재즈팬은 아니지만, 낭만을 즐기면서 놀기에 적당한 축제라는 긍정적 평이 많았다. 재즈팬으로 재즈와 상관없는 지역 특산물이나 기업행사 등 상업적인 분위기에 대한 불만도 살펴볼 수 있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둘러싼 흥미로운 상품으로 “재즈 막걸리”가 있었다. 재즈 하면 쉽게 연상되는 와인이 아니라 막걸리라니 신선한 발상이다. 이 술은 그해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할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서 숙성되었다. 음악 숙성이 요즘에 유행하는 방법인지 찾아보니 간장도 그렇게 만든 게 있었다. 아무튼, 재즈라는 외래 음악과 막걸리라는 전통의 술이 결합한 상품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과 묘하게 닮아있다. 전통과 외래가 교차하는 축제라는 독특한 성격이 유지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다. 지역 축제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즈의 조합이 생소하지만, 1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통과 외래를 섞고 숙성 시켜 재즈 페스티벌은 어떤 맛을 내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은 재즈와 가평의 만남이다. 비록 국내에서 대중적인 음악 장르가 아니지만, 재즈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상당한 팬을 확보한 세계적인 음악이다. 지역과 세계의 만남에서 어떤 갈등이 생겨나고 있고, 그 속에서 전통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경기도 가평이라는 지역이 어떻게 세계적 문화상품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려면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축제 관계자, 지역민, 재즈 뮤지션, 참여자 등에 대한 인터뷰로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만약 한국에 완전히 귀국하게 되면 좀더 가까이서 자라섬 재즈 축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때까지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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