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프렌즈”였다. 두 작품 모두 뉴욕이고 남녀 친구가 허물없이 노는 것이 아주 비슷하다. 프렌즈에서 캐릭터가 모두 직업은 시원찮으면서도 평수가 넓은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것 등 현실성이 약간 떨어진다. 뉴욕의 살인적 물가를 고려할 때 그 정도의 아파트에 살려면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보다 현실적이다. 20대 중반의 친구들이 허름한 아파트에 모여 산다. 주말이면 술집에 모여서 밤을 즐기는 전형적인 20대의 삶이 시트콤의 중심이 된다. 건축가 테드는 로스쿨 학생 마샬과 절친한 사이다. 마샬에겐 결혼을 약속한 유치원 교사 릴리가 있다. 그리고 직업을 좀처럼 가늠할 수 없지만 부자 친구 바니도 있고, 테드와 잠시 엮이게 되지만 결국 친구가 되는 로빈도 중요 인물이다. 꿈은 있지만 현실이 좀처럼 받쳐주지 않는 20대의 삶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한국 케이블에서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 시트콤은 2030년 어느 날 테드가 십대 자식들에게 어떻게 엄마를 만나게 되었는지 들려주는 설정이다. 제목에는 엄마가 있지만 이 작품에는 엄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엄마는 언제쯤 나오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의 테드의 젊은 날만 펼쳐진다. 시리즈가 끝날 때라도 엄마의 얼굴을 보여줄까?
아이들에게 아빠의 결혼 전의 삶은 다소 충격적이고 재밌는 경험일 것이다.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설레는 연애담은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왜 아빠가 엄마를 만나게 되기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단서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테드, 바니, 마샬, 릴리, 로빈이 엮어가는 실수와 황당한 이야기만 펼쳐진다.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가장 엉뚱한 바니다. 그는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없는 사실을 끌어다가 자신의 이론을 만든다. “천재 소년 두기”의 닐 페트릭 해리스가 연기한 바니는 섹스앤더시티의 사만다와 닮았다. 자신감이 흘러 넘치고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가 지어낸 유행어는 중독성이 있다. “legendary”, “suit up” 을 듣다 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말투로 따라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테드는 주인공이지만 조금 밋밋한 캐릭터다. 시트콤의 중심을 잡아주는 이런 캐릭터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엉뚱하고 바보 같은 다른 캐릭터가 눈에 튄다. 몸치 테드가 로빈과 사귀려고 기우제 춤을 배워서 옥상에서 추는 모습은 고지식하면서도 낭만적인 성격이 잘 표현된 에피소드다. 테드의 친구 마샬도 역시 엉뚱하다. 그는 키가 190이 넘는 거구지만 여리고 잘 우는 소녀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여린 마샬과 과도한 마초 근성의 바니는 자주 다툰다. 이들의 갈등도 이 시트콤의 재미를 더한다.
이 시트콤에서 커피보단 맥주가 자주 등장한다. 맑은 정신보다 취한 상태로 있는 캐릭터가 많은 편이다. 취기 어린 우정이 자라난다. “섹스 앤 더 시티”가 30대 여성들의 커피숍 수다라면,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20대 남녀의 호프집 취중 담소라고 할 수 있다. 27살의 테드가 친구들과 우정을 키우면서 어떻게 30대로 넘어갈지도 궁금하다. “프렌즈”와 비슷하게 이 시트콤도 남녀 사이의 우정이 나이가 들어서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조건이 하나 있다면, 모두 싱글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