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에 마구 널브러져 있는 잡지 더미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자책이 있으면 저 혼잡한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거야. 킨들이나 아이패드면 그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게 들지만, 잡지나 신문이라면 언제든지 전자책으로 갈아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기사는 시의성이 있어서 당시에는 쓸모가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보게 되지 않는다. 몇 달이나 몇 년이 지난 잡지를 열어보는 일은 아주 드물다. 얼마 전에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몇 년간 묵은 잡지를 내다 버렸다. 다시 읽지도 않는 잡지를 왜 그렇게 모았는지. 지나간 공연평, 영화평, 작가의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는 것은 마치 봄날에 겨울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한 경험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원하는 글을 찾아서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정치색이나 문화적 관점이 자신과 맞는 잡지를 잘만 고르면 정보의 홍수에 익사하지 않고 헤엄쳐 나올 수 있다. 선별된 잡지 가운데 원하는 글을 골라서 읽는 것도 일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읽지 못하는 잡지 기사도 허다하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나 새로운 기사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아이패드까지 나온 마당에 지나간 아이팟에 대한 기사는 읽어봐야 시간 낭비다. 잡지의 운명이란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이면 끝나버린다.
버려지는 잡지는 지구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사보다 광고가 더 많은 잡지의 부피도 상당하다. 제때 버리지 않으면 잡지는 책꽂이 몇 칸을 꽉 채운다. 몇 년간 구독하던 잡지가 차지한 곳을 비우자 책장에 여유가 생겼다. 공간 낭비며, 종이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전자책으로 잡지를 본다면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잡지는 책장 대신에 디스크의 공간을 차지하며 다 읽고 나면 휴지통에 버릴 수 있다. 그것도 귀찮으면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종이책은 아직 포기할 수 없겠지만, 잡지는 쉽게 디지털로 갈아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킨들이나 아이패드를 사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종이낭비도 막을 수 있고 공간활용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배송하느라 소비되는 연료도 줄일 수 있다. 잡지의 반짝이는 종이에 인쇄된 이미지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어렵겠지만 나한테 그런 즐거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포기할 수 있다.
아직 디지털 잡지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몇 년 후에는 병원 대기실에서 디지털 잡지를 읽을 날이 올 수도 있다. 가격도 내리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적당한 때가 오면 나도 디지털 잡지로 넘어갈 생각이다. 그냥 읽을거리나 고급정보에 대한 소비가 존재하는 한 잡지는 아마 살아남을 것이다. 오히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정보를 잘 가공할 수 있는 잡지의 장래는 밝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