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필름 누와르의 팬은 아니다. “길다(Gilda, 1946)”를 보고 나서도 이 장르가 여전히 어색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어둠침침한 흑백 배경과 모호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런 답답한 상황 속에도 이 장르의 영화를 집중하게 하는 건 주인공이다. 하드보일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마초이면서 동시에 나약한 내면을 가진 이중적 캐릭터는 다소 단순한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글렌 포드가 맡은 쟈니 파렐은 전형적인 필름 누아르 주인공의 요건을 다 갖추고 있다. 쟈니는 보스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갈등 속에서 고뇌하는 모습이나 심경의 변화는 영화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필름 누아르 장르가 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특성이 있지만, 이 영화는 그 암시조차 인색했다. 그게 이야기 전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그리고 쟈니는 다른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에 비해서 다소 밋밋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리타 헤이워스가 클럽에서 춤을 추며 “Put the Blame on Mame”을 부르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아니타 커츠 엘리스다. 이 시기에 노래를 더빙하는 건 예사였다. 어려운 노래도 아니었고, 대단한 춤도 아니었던 이 장면이 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다.
필름 누아르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여주인공, 팜므 파탈이 바로 길다(리타 헤이워스)다. 그녀는 퇴폐적 매력을 무한대로 발산하면서 영화 속 남자란 남자는 모두 홀리고 다닌다. 리타는 충분히 그런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이 영화가 흥행하면서 리타의 대표작이 되었지만, 그 이미지가 그녀를 옥죄기도 했다.
자유로운 영혼, 길다는 감옥에 갇힌 죄인 같은 삶을 산다. 그녀는 카지노의 사장 부인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사랑도 자유도 없다. 클럽에서 춤을 추며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은 바로 길다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야생적 본능을 지닌 길다를 사랑없는 저택에 가두는 것은 예고된 불행이다.
필름 누아르의 이해할 수 없는 팜므 파탈도 알고 보면 폭력적 상황이 나은 산물이다. 팜므 파탈의 성적 매력도 폭력에 대응하여 생긴 병적 반응이다. 길다의 노래와 춤은 알맹이 없는 사랑 속에서 자란 꽃이다. 비록 양분을 잘 먹고 자라긴 했지만 속은 병들어 죽어가는 꽃이다. 모국을 떠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 없는 결혼을 한 길다는 외롭고 슬픈 꽃이다.
리타 헤이워스는 베티 그레이블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소중하게 품고 다니던 핀업걸 사진의 모델이었다. 40년대 군인의 우상이자 성적 상징이었던 리타. 그녀의 전성기 시절의 매력을 이 영화에서 마음껏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