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베스트셀러 책을 중심으로 출판계를 파악하자면 대체로 독자 연령층이 확실히 젊어졌다. 단연 눈에 띄는 작가는 “트와일라잇”을 쓴 스테파니 마이어다. 그녀의 뱀파이어 삼부작이 베스트셀러 1위부터 3위까지 휩쓸었다. 섹시한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 10대 여성 독자층이 베스트셀러로 끌어올려 준 셈이다. 작품성보다는 주제 선정이 아주 탁월했다. 금기된 10대의 사랑에 대한 내부적 갈등을 뱀파이어와 결합한 독특한 주제는 극적 효과가 있다. 이 작품은 작가 꾼 꿈에서 영감을 받아서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고 한다.
주목할만한 또 다른 책으로 “윔피 키드” 시리즈가 있다. 제프 키니 책의 독자는 스테파니 마이어의 독자층보다 어리지만 의외로 나이 든 사람도 좋아한다. 나무 작대기처럼 마른 국민 약골 주인공의 성장기다. 간단히 말하자면, 평범한 아이의 평범하지 않은 정신세계를 다룬다. 그림체가 세련된 건 아니지만 관점은 새롭다. 착하기만 어린이의 시점이 아닌 약간 삐딱한 관점이다. 벌써 4번째 책이 작년에 나왔고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될 예정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이 책을 보았는데 단숨에 읽어버렸다.
10위 오른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은 1988년에 나왔지만, 올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흥행한 작품이다. 모여라 꿈동산에 나올 법한 대두 괴물과 친구가 된 소년 이야기다. 10위권 안에 6권이나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어른이 되어 점점 책을 읽지 않게 된 건지, 아이들이 점점 더 책을 많이 읽게 된 일이지 알 수 없지만 책읽는 나이가 어려진 건 고무적이다.
전통 매체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노령화를 꼽을 수 있다.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은 장르의 매체는 상업적으로 약해지고 그와 더불어 사회적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향유층이 늙어서 죽으면서 그 매체도 함께 늙어가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 확률이 아주 높다. 클래식 음악이 청소년층 유입을 위해서 그토록 노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로 영화, 게임, 인터넷에 밀려서 십 대 인구에게 천대받는 현실이다.
2009년은 영화의 도움을 받은 책이 유난히 많은 한 해였다. 스테파니 마이어와 모리스 샌닥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영화로 각색되었다. 영화가 책의 판매를 도와주었다.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들어 원작소설을 찾아서 읽게 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영화는 책뿐 아니라 음반 판매에도 이바지하였다.
미디어 융합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경향이다. 영화뿐 아니라 인터넷이나 다른 뉴미디어와 전통 매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될 것이다. 트위터가 영화 흥행을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고, 인터넷 팬클럽이 드라마 이야기 전개에도 영향을 준다. 매체를 넘나드는 성공기는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젊어진 독자층과 뉴미디어의 후원이 2009년 미국 출판시장을 읽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출판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책의 모험은 흥미롭다. 2010년은 전자책 열풍이 한바탕 몰아칠 기미가 보이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는 책의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서관의 어린이 서가가 점점 커지는 것도 미래의 자양분이다.
2009년 베스트셀러 책 (미국)
- Breaking Dawn – Stephenie Meyer
- Eclipse – Stephenie Meyer
- Twilight – Stephenie Meyer
- Last Straw (Wimpy Kid #3) – Jeff Kinney
- Shack – Paul W. Young
- Dog Days (Wimpy Kid #4) – Jeff Kinney
- Act Like a Lady, Think Like a man – Steve Harvey
- Going Rogue – Sarah Palin
- Time Traveler’s Wife – A. Niffenegger
- Where the Wild Things are – Maurice Send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