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와 광고

드라마 “트리플”의 두 가지 중요한 직업은 피겨 스케이팅과 광고다. 0.1점의 점수 차로 승부가 갈리는 피겨 스케이팅이나 광고를 따내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터 같은 광고업은 모두 팽팽한 ‘경쟁’이 바탕이 되는 직종이다. “태릉선수촌”,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만든 이윤정 피디는 “트리플”에서 피겨 스케이트라는 스포츠와 광고업을 결합한 새로운 드라마에 도전한다. 두 직업은 경쟁이 점점 강조되는 현대사회의 속성이 잘 드러나는 직업이라서 비교적 서로 잘 어울린다. 차가운 빙판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펼치는 예술 스포츠 피겨 스케이팅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미적 감각이 15초 동안 화면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광고와 무척이나 닮았다. 순간의 미학이다.

이 드라마의 전체적 구성이나 캐릭터 설정은 생각보다 잘 짜여 있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두고 봐야겠지만 시작이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홍보 과정에서 최초의 피겨 스케이팅 드라마라는 것을 강조하고 스타 피커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효과를 노렸지만 김연아 팬층과 충돌하는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하면서 초반 시청률도 아주 부진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구성이나 만듦새가 좋은 편이라 후반으로 갈수록 나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피겨 선수가 되려는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씩씩한 소녀는 새롭지는 않지만 언제나 공감이 가는 캐릭터이다. 정이 가지 않을 정도로 차갑고 강한 외면을 가지고 있지만 복잡한 과거와 상처 투성이 남자는 대표적 주인공이다. 현대적 감수성을 가진 개성적인 캐릭터와 경쟁의 뜨거운 환경이 예상되는 구조는 구미를 당기게 한다.

김연아라는 걸출한 피겨 스타의 후광에 기대고 있지만 이 드라마의 다른 강점은 광고다. 광고는 드라마에서 자주 다루는 직종이 아니다.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광고가 중심이 된 적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수 있다. 60년대 뉴욕 광고업계를 다룬 미드 “매드맨”, 시카고 카피라이터 출신의 작가들이 제작한 “트러스트 미”, 마녀를 아내로 둔 광고업계 종사자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 “비위치드”, 80년대 여피 광고업자 마이클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드라마 “써티섬씽”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광고업계는 피 말리는 경쟁과 승부가 팽팽하게 하루하루 전개되기 때문에 드라마가 따로 없다. 최근에 미국 케이블 텔레비전 TNT에서 방송한 “트러스트 미”에서 같은 회사의 다른 팀 프로젝트를 몰래 빼 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제목이 의미하는 “나를 믿으라”라는 말은 광고업에서 역설적인 표현이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야생의 세계, 동물의 왕국이다. 맹수만이 살아남는다.

생소한 직업이 두 개나 한꺼번에 다루는 것이라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직업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만 살아있다면 직업 묘사의 미숙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직업에 대한 취재와 분석이 아무리 치밀해도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게 될 것이다. 피겨, 광고, 사랑이 교차하는 드라마의 강점을 살린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재료는 신선하니 요리만 잘하면 된다.

이윤정 피디의 장점은 공간 속에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섬세한 연출이다. 전작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커피숍이라는 공간을 구석구석 활용하면서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잘 잡아냈다. “트리플”은 그 공간이 세 남자와 이하루(민효린)가 사는 신활(이정재)의 그림 같은 집이다. 다른 중심 공간은 광고회사와 아이스링크장이 될 것이다. 전작보다 더 많은 공간을 오가며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이윤정이 얼마나 그 능력을 보일지 궁금하다.

아이스링크장에서 날이 선 피겨 스케이트로 빙판을 가르며 성공을 향해 달리는 피겨소녀. 빙판만큼이나 차갑고 냉정한 광고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세 남자. 이들이 만나서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처럼 서로를 키우는 성장영화가 될 것인가. 아니면 느슨한 일상을 다룬 잔잔한 드라마가 될 것인가. 성공이 보장된 “커피 프린스 1호점”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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