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틀어도, 인터넷을 접속해도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불경기, 전염병, 인권탄압, 핵무기에 관한 소식을 듣다 보면 내일이라도 당장 무슨 일이 터질 듯하다. 주위에도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개 현실탈출 욕구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세계 대공황기에도 쇼비즈니스는 오히려 호황기를 누렸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 기사에 미국 영화관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를 봤다. 나도 공공도서관을 더 자주 찾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빌려볼 게 점점 줄어든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경쟁이 심해졌다. 예전 같으면 여유 있던 다큐멘터리 비디오도 몇 번이나 허탕을 쳤다. 가능한 빌려 갈 수 있는 한도를 꽉 채워서 영화, 음반을 빌려오고 있다. 원래는 그걸 바탕으로 평을 좀 써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의욕이 없어서 포기했다.
요즘 흥얼거리며 듣고 있는 노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이다. 작년에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우연히 홍대 앞 커피집에서 공연하는 하림을 봤다. 그 공연을 보고 나서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그의 노래를 찾아보다가 이걸 발견했다. 그의 음반을 사서 들으려고 했는데 이미 절판이 되었다. 요즘은 음반이 나오고 몇 년만 흘러도 구하기가 워낙 어렵다. 이제는 나도 디지털 싱글을 사야만 하는 시기가 온 건가. 아무튼 이 노래에 끌리게 된 이유는 공감이 가는 가사 때문이었다.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새로운 사람만 한 게 있을까. 완전히 치유되지 않겠지만 과거에 얽매여 살지 않으려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노래는 담담하게 시작해서 서서히 감정이 끓어 오르다가 다시 담담하게 사랑에 대한 성찰로 마무리하고 있다. 사랑은 흘러가는 것이지만 그걸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성시경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부른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이다. 같은 곡이지만 누가 부르냐에 따라서 그 느낌이 확 달라진다. 그걸 비교하는 건 은근히 재미있다. 하림이 부른 건 시간이 꽤 흘러서 감정이 상당히 정리된 느낌이지만, 성시경이 부른 건 아직도 혼란스러운 감정이 더 남아있는 상태처럼 보인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히듯이 지금의 위기 뒤에 좋은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일단 음악 한 곡으로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다시 깨어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