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폭력에 대한 고발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3일’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스페인 국민을 학살한 현장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이 약한 자에 대한 폭력을 고발하는 역사적 상징이 되었다. 에두아르도 마네가 그린 ‘막시밀리언 황제의 처형’이나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한국전쟁 학살’과 ‘게르니카’는 모두 고야의 이 작품에 깊은 영감을 받아서 그렸다.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전쟁의 폭력을 생생하게 표현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 지배에 반발하여 스페인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프랑스 군대는 스페인 시민 중에 칼을 소지한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총살했다. ‘1808년 5월 3일’은 프랑스 군대의 총 앞에 힘없이 쓰러지는 스페인 백성들은 포착한다. 고야를 비롯한 스페인 자유주의자들은 프랑스 대혁명의 가치를 숭상했으며 스페인에도 그런 혁명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스페인 침략 때문에 예전에 가졌던 그런 생각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왕족의 권위에 반감을 품은 고야였지만 프랑스 점령 시기의 폭력은 더 참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비록 이 기간에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프랑스 왕족이나 귀족의 초상화를 그려주긴 했지만, 고야는 프랑스가 물러나자 폭정에 항거하는 영웅적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1808년 5월 3일’은 종교적 기호와 근대적 표현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간에 하얀 옷을 입고 두 팔을 번쩍 들고 군인을 쳐다보는 한 남자다. 이 사내의 동작을 자세히 보면 십자가가 연상된다. 램프의 빛을 하얀 옷으로 받아 더욱더 환해진 그의 주변에 광채가 도는 듯하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로마군을 바라보듯한 이 장면에서 사내는 프랑스 군인을 바라본다. 그 사내 아래에 피를 흘린 채 죽어있는 다른 남자도 십자가 모양이다. 총살을 당할 운명인 다른 사람들 가운데 수도승도 보인다.

그림의 초점이 되는 희생자들과 달리 학살을 주도하는 병사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학살극을 도맡은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질서 있게 줄을 맞춰서 비인간적으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있다. 얼굴 없는 군인은 비인간적 폭력의 은유이다. 총살을 당하기 직전의 장면을 그려놓은 이 그림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선다. 이 작품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다룬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다.

힘 있는 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 사실이다. 일본제국에 의한 한반도 지배도 그러하고,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제국들의 통치도 비슷하다. 자국 내에서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박해하는 일도 흔하다. 양반이 천민을 착취하는 것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 모든 폭력 상황에 대한 묘사가 고야의 이 그림에 담겨있다.

이 그림에서 하늘은 어둠으로 뒤덮여있고 학살 현장은 언던으로 가려져 있다. 역사 속에 은폐된 이름 없는 약자의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주검을 기억하게 만드는 게 그림의 힘이다. 200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이유는 무얼까. 이 그림이 고발하는 추악한 현실이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살의 현장을 그림으로 표현할 고야가 어디 한 명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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