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는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가수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이 워낙 팬이어서 자주 들었다. 자동차에서 노래방에서 이소라의 노래는 지겹게 들었다. 이소라는 노래도 잘하지만, 그 감정을 잘 살려서 부르고 특히 가사에 많이 공감했었다. 정말 오랜만에 ‘음악여행 라라라’에서 이소라를 봤다. 예전부터 정신세계가 특이한 4차원이란 걸 알았지만 이렇게 감수성이 예민할 줄이야. 이날 따라 유난히 짧은 머리에 검은빛 화장을 해서인지 더 슬퍼 보였다. 가족, 애완동물, 친구, 주변 사람을 생각하며 자주 울었다고 하니 더 그래 보인다. 그렇게 감수성이 풍부하니 그런 노랫말이 나오는가 싶다.
‘라라라’의 구성이 약간 달라져서 패널로 가수가 참여하고 이날은 김구라만 나왔다. 음악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편성인 거 같긴 한데 예전만 못하다. ‘라라라’의 차별성이 시청자나 일반인의 시각에서 가수와 인터뷰하는 방식이었는데, 가수들이 패널이 되니 질문도 조심스럽고 대화도 음악에만 한정된다. 김구라의 독설도 그런 패널 속에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 없으니 공연 빼곤 볼 게 별로 없었다. 이소라의 개인적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잔뜩 기대했는데 조금 맥이 빠졌다.
이소라가 첫 곡으로 부른 ‘바람이 분다’는 영화 ‘여자 정혜’의 영상과 함께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노래이기도 하다. 이별의 슬픔과 풍경을 잘 표현한 노래지만, 인생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다. 시간의 빠른 흐름 속에 정지된 사람도 보인다. 마치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몇 번 부르는 걸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소라가 부르는 걸 다시 들으니 그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바람이 분다
작사: 이소라, 작곡: 이승환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거꾸로 생각하면 바람은 이런 살풍경도 자아내지만 동시에 내게 소중한 걸 깨닫게 해준다. 바람 속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게 되면 머물렀던 마음도 움직이게 된다. 바람은 고마운 존재다.
이소라에게 좋은 점은 철이 들지 않고 한결같은 것이다. 변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그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늙어갈 수 있는 것도 대단하다. 나처럼 쉽게 변하지 못하는 사람도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게 그대로만 있기를 바란다면 내 욕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