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사망자가 6명이 나온 용산 철거민 참사의 일차적 책임은 살인 진압을 한 ‘공권력’이다. 보수언론은 공격을 주도한 경찰을 오히려 피해자로 서술하며 철거민의 폭력성만 강조하는 기사를 무차별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공권력과 보수언론의 비인간적 시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면, 이번 참사의 피해자는 퇴거를 강요당한 철거민이다. 이번 농성도 사망자가 나지 않았으면 사회적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공권력으로 쉽게 진압될 사안이었다.
철거민 죽음을 책임져야 할 배후세력은 ‘재개발’ 사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후세력은 보수언론이 말하는 철거민 농성을 조종한다는 친북좌파, 빨갱이가 아니다. 근사한 건물로 재변신시켜주고 돈도 더 벌 수 있다는 재개발 사업이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흉이고 경찰은 하수인일 뿐이다. 철거민을 강제로 희생시켜 새로 세울 건물은 지하 9층 지상 35층 건물이다. 사업자는 삼성물산, 대림, 포스코이다. 이들은 협상을 거부하고 재빠르게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려고 공권력을 투입했다. 재개발 사업으로 이익을 보는 이들은 건설회사와 더 돈 많은 이들이다. 원주민이 재개발 건물에 정착할 비율은 아주 낮다. 철거민은 얼마 되지도 않는 보상금만 가지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 서울시에서 미친 듯이 추진하는 뉴타운, 재개발은 원주민을 내쫓고 개발 주체들만 배를 불리는 정책이다.
재개발을 추진하려면 원주민에 대한 재정착 조건을 마련해야 하지만 현재 재개발정책은 이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이번에 참사를 당한 용산 철거민의 재정착 조건은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집세 4개월분이다. 적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 그곳에서 살거나 사업을 해온 원주민의 보상비용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적은 비용으로 건설비를 최소한 들이고 이익을 보겠다는 이기적 사업방식이 결국 인명 희생을 불러왔다. 철거민을 건설의 ‘걸림돌’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봤으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삶의 터전을 빼앗길 두려움에 떨며 싸우는 철거민이 있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권리를 짓밟고 사업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재개발 논리는 살인적이다. 폭력적으로 개발된 신축건물이 약자의 피눈물 위에 우뚝 솟을 것이다. 그동안 별 비판 없이 추진되던 비인간적인 재개발 정책을 다시 살피지 않는다면 재개발 살인이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철거에 저항하다 죽지 않더라도 철거민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삶의 터전을 잃고 서서히 고독한 곳에서 죽어갈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합법적으로 살해하는 죽음의 재개발정책을 이제는 재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