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사랑에 관한 총 18편의 5분짜리 단편영화 모음이다. 이 작품은 영화 ‘뉴욕 이야기’나 ‘포룸’을 연상시키는 구성이면서 좀더 느슨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감독을 비롯하여 미국, 브라질, 멕시코 등 세계 유명 감독들이 참여해서 단 이틀 동안 촬영을 마쳐야 했다. 이들은 파리의 20개 행정구역을 나눠서 각각 촬영했고 최종적으로 모인 작품은 18편이었다.
18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알렉산더 페인이 감독한 미국 덴버의 우체국 직원이 파리로 관광하러 와서 겪는 체험이다. 이 중년여성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홀로 파리로 여행 온다. 그녀는 영어로 소통할 수 없는 프랑스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덴버에 친구들도 있고 애완견도 있다며 스스로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외로운 여자다. 그녀가 우연히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외로움을 느꼈지만 먼 외국 파리에서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고 파리와 사랑에 빠진다.
인상적이었던 다른 작품은 코엔 형제가 감독하고 스티브 부세미가 주연한 역시 관광객 이야기다. 파리 지하철역에서 가이드북을 보고 있던 그는 프랑스인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가이드북의 충고를 어기고 건너편에 있던 커플의 눈을 마주친다.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는 봉변을 당한다. 말없이 표정 연기로 걱정스러운 관광객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 스티브 부세미는 놀랍다. 가이드북으로 파리를 바라보는 남자의 이야기다.
황혼기의 노부부가 이혼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만남을 갖는 영화도 괜찮았다.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감독한 이 영화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부부가 헤어지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월터 살라스가 감독한 영화는 이민 여성의 어려운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아이는 탁아소에 맡기고 열차를 몇 번 갈아타고 가서 도착한 부잣집의 다른 아이를 돌봐주러 가는 여인의 일상이다. 그 아이가 울자 자신의 아이에게 불러줬던 똑같은 자장가를 그 아이에게도 불러준다.
이슬람 여성을 보고 첫눈에 반한 프랑스 청년의 이야기도 굉장히 흡입력 있다. 그의 친구들은 지나가는 이민 여성에게 경멸적인 말을 퍼붓는 데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이슬람 여자가 넘어지자 그를 비웃던 친구들을 뒤로 한 채 그 여자를 찾아 모스크로 달려간다.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이민의 문제를 무겁지 않게 은유적으로 다룬 단편이다.
5분으로 압축해서 이야기를 담다 보니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단편들도 있었다. 크리스토퍼 도일이 감독한 작품은 미용실에 미용용품을 파는 남자가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한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이미지만 난무하고 맥락과 고리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초현실적이지도 않다.
나탈리 포트만이 미국 배우로 나온 단편에서 그녀는 장님 남자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는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이미지만 빠른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보다 차라리 첫 단편이 다룬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우연한 사랑이 더 설득력 있다. 자신의 차 옆에 쓰러진 여인을 차에 태우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는 묘하게 흥미롭다.
오스카 와일드 유령의 도움으로 사랑을 구한 남자의 이야기도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사랑 이야기다. 이외에도 다양한 파리의 사랑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혼을 결심한 남자가 아내와 다시 사랑에 빠지는 독특한 이야기도 있고, 배낭 여행객으로 파리에 왔다가 뱀파이어와 사랑하는 단편도 있다. 전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서로 공간적으로 겹치는 단편도 있지만 대체로 느슨하게 흩어진 구조의 영화다.
외국 감독이 주로 찍으니 관광객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편이 더 솔직한 시선이어서 좋았다. 외국 감독이 파리인 시선으로 바라본 사랑을 말하기에 5분은 너무 짧다. 이 영화는 올여름에 보았던 매그넘 전시회를 연상시켰다. 20명의 외국 사진작가들이 한국을 사진에 담는 프로젝트 전시회였다. 외국인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본 사진은 아주 흥미로웠다. 매그넘 전시회의 사진작가 가운데 한국인의 상업문화를 고발한 마틴 파나 한국 여성의 자아를 성찰한 리즈 사르파티의 작품은 가슴을 쳤다. 이와 반면에 서구인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아주 불편해지기도 했다. 파리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 영화를 보고 너무도 아름다운 파리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비록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도시로 악명이 높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치와 문화예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도 파리다. 과연 파리는 사랑이 넘치는 도시일까. 언젠가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