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야구를 아시나요?

‘그들만의 리그’를 보기 전까지 나는 여자프로야구가 미국에 존재했다는 것도 몰랐다. 전미 여자 프로야구 연맹은  1943년에 창립되어 1954년까지 12년 동안 미국 야구 역사를 장식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쓸만한 남자선수들은 전부 전쟁터에 나가 있던 시절 껌 재벌 ‘필립 위글리’가 주축이 되어 여자 프로야구를 설립하여 선수 빈곤으로 힘들어하던 남자 프로야구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쟁터에 나간 남자들 때문에 집 안에 있던 여자들이 잠시 공장이나 다른 일터에 일할 기회를 가졌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돌아온 남자들을 위해 여성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자에게 남겨진 직업이라곤 비서직밖에 없었다. 여자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다시 찾기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여자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로 잠시 인기를 얻었지만, 남자 프로야구에 밀려나야 했다. 그래도 여자야구는 다른 분야에 비해 놀랄 만큼 오래 버틴 셈이다.

오레건주 한 마을의 타고난 재능이 있던 언니 도티(지나 데이비스)와 실력은 좀 모자라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던 동생 키트(로리 페티)는 우연히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일리노이주 록포드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뉴욕 브루클린 출신 메이(마돈나)와 도리스(로지 오도넬)이 팀을 이뤄서 서로 경쟁하는 이야기다. 페니 마샬 감독은 남성 스포츠 영화가 강조하는 경쟁과 승리보다 팀원들 사이의 감수성과 감정을 잘 살리는 영화를 만들었다.

야구는 미식축구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중 하나다. 야구와 미식축구는 미국 문화의 두 가지 측면을 상징한다. 미식축구는 서부개척시대의 땅따먹기처럼 집단을 이뤄서 공격적 공동체 문화를 나타낸다. 날씨에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 안에 상대의 진영으로 파고들어 점수를 내는 미식축구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전쟁은 미국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야구는 개인주의적 문화의 핵심이다. 9명이 팀을 이뤄서 하는 경기지만 결국 투수와 타자가 대결하는 승부다. 점수도 상대 진영으로 돌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홈(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터와 집을 오가는 일상적 문화가 야구로 재현된 것이다.

대표적인 스포츠로 야구가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인에게 최고의 스포츠는 야구가 아닌 미식축구다. 미식축구에 팬을 많이 빼앗긴 야구는 점점 미국에서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인의 취향이 변했다는 증거다. 공격적이고 집단적인 문화가 미국에서 팬을 더 많이 확보한 것이다.

여자프로야구가 등장했을 때 보수층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집에서 조신하게 집안일이나 해야 할 여자들이 남자들처럼 야구장에서 뛰고 구르는 것은 여성의 이미지를 해친다고 보았다. 이런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선수들은 예절 수업도 따로 받아야만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인기를 위해서 짧은 스커트를 입고 야한 자세로 공을 잡아야 했다. 야구만 잘해선 안 되고 사회적 체면과 인기도를 모두 고려해야 했으니 그 고충이 말도 못 한다. 도티는 영화 내내 야구에 완전히 빠지지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 도티의 이런 모호한 태도는 당시 여성의 지위나 입장과 비슷하다.

이 영화에서 감동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모두 나이가 들어서 1988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초청받아서 모두 모였을 때다. 도티는 한 시즌만 마치고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오레곤으로 돌아갔다.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모인 왕년의 선수들을 오랜만에 본 도티는 눈물을 흘린다. 그 장면에서 실제 여자 프로야구 선수들이 상당수 출연했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여자 프로야구 선수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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