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시리즈로 히트한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화판은 그 후 4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한다. 뉴욕의 30대 여성의 연애를 다룬 텔레비전 시리즈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40대 여성의 이야기로 바뀐다. 과연 캐리, 미란다, 사만다, 샬럿은 성숙해질까, 그냥 나이가 들까?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넷의 모습은 나이만 먹은 예전의 그들이랑 비슷하다.
케이블 방송사 HBO에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영화로 제작된 작품도 보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영화로 만든 ‘섹스 앤 더 시티’의 이야기는 통쾌하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다행히 캐릭터는 망가지지 않아서 흥미 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이 시리즈에 빠져들게 된 이유는 솔직하고 대범한 그녀들의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자의 사랑과 섹스와 도시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처음으로 솔직하게 다뤘다. 이런 소재는 텔레비전에서 금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뉴욕 신문에 섹스 칼럼을 쓰는 캐리 브래드쇼와 그녀의 친구들은 카페에 모여서 노골적으로 성생활에 관한 수다를 떤다.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늘어놓는 네 명의 여성은 이 시리즈의 중심 인물이다. 거짓으로 포장된 근사한 연설이 아닌 노골적 잡담이 이 시리즈의 핵심이다. 40대가 되어서도, 영화로 오면서도, 이들은 변함없이 솔직하다.
캐리를 비롯한 다른 인물도 40대가 되어서도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겪는다. 별거를 경험하는 미란다나 새로운 도시에서 외로워하는 사만다도 나이가 더 들었다고 해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이들이 50대가 된다고 해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나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혜를 이 영화는 들려준다.
여성의 시각으로 통쾌하게 사랑을 묘사하고 있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매력은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오히려 영화에서 남성의 캐릭터는 약하고 여성 중심의 시각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캐리, 샬럿, 사만다, 미란다의 관계도 시리즈보다 더 끈끈해 보인다. 아이와 남편이 이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왔지만 넷의 우정의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기본 이야기는 캐리의 결혼이다. 결국 빅과 결혼을 하게 된 캐리는 흥분된 마음으로 준비하지만, 뜻밖의 난관에 봉착한다. 시리즈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빅과 캐리는 영화 속에서도 비슷한 운명이다. 결혼을 사랑의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샬럿, 결혼은 사랑과 일상의 중간으로 보는 미란다 사이에서 캐리는 고민한다. 결국 캐리는 이런 갈등 속에서 그녀만의 결론에 이른다.
한국 20~30대 여성의 아이콘이 된 캐리는 자유로운 뉴욕 여성이다. 한국에서 그녀는 스타벅스와 더불어 소비주의의 화신이 되었다. 그녀는 몇백 달러 짜리 구두를 사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 상품은 이 영화의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다. 특히, 루이뷔통은 상당히 비중 있는 조연이 되었다. 이 시리즈와 영화에 대한 많은 비평은 반소비주의와 여성주의에서 나온다. 남자에 휘둘리는 캐리는 독립적인 여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여성주의의 여성관과 거리가 멀다. 무분별한 소비에 빠져 사는 캐리는 소비주의 사회의 피해자다.
캐리는 여성의 섹스에 관해서 당당하게 말하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성의 우정이 남성들의 것 못지않게 끈끈하고 단단함을 일깨워 준다. ‘섹스 앤 더 시티’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여성의 사랑을 명쾌하고 통쾌하게 보여준 영화로 기억될 것은 분명하다.
네 명의 주인공에 대한 개인적 취향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얄미울 정도로 이기적인 캐리의 모습에 가끔 실망하기도 했다. 그것도 자기주장에 강한 여성이라고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답답할 정도로 여성적인 샬럿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인물처럼 보였고, 여자 카사노바처럼 대범하게 살아가는 사만다는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가끔 엉뚱하지만, 현실적인 미란다가 내 취향에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