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하는 문화가 발달한 미국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혹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미국은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였고 새로운 문화였다. 한국에서 내가 쌓아놓았던 문화적 경험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바닥부터 문화적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했다. 그런 막연한 내게 말을 걸어주며 안내해준 친구는 온라인 매장 ‘아마존’이었다. 아마존에 계정을 만들고 책을 몇 권 사자 비슷한 느낌의 책을 몇 권 추천해줬다.

아마존뿐만 아니었다. 대형 체인형 서점인 ‘반스앤드노블’이나 ‘보더스’에서 비슷한 성향의 책을 모아놓거나 직원 추천도서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써온 비디오 대여 서비스인 ‘넷플릭스’나 ‘블록버스터’도 추천영화를 알려줬다. 모두 더 많은 상품을 팔아먹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지만, 물건을 살 의향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추천 목록은 상당한 도움이 된다. 미국 문화에 초보였던 시절부터 추천목록을 참고해서 다른 물건을 사게 되었다. 지금은 추천목록에 의지하지 않는 편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참고대상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추천목록이 별로 없었다. 주로 친구나 선후배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주변에 누군가 괜찮은 영화를 추천해주면 가서 보는 식이었다. 기계적 알고리즘에 따라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아마존의 추천목록보다 훨씬 개인적 판단과 의견이 담겨있는 한국식 추천이 훨씬 인간적이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편이었다. 한국은 사적 영역이 잘 구축된 사람에겐 유리한 환경이다. 반면에 사적 영역 바깥에서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왜 한국과 미국이 이렇게 다를까? 한국은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추천하고 받는 욕구가 대부분 충족되지만, 미국은 개인주의적 문화 속에서 그게 충족이 되지 않아서 그런 서비스가 발달한 것은 아닐까. 이게 나의 가설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기는 인터넷은 음악 추천사이트다. 평소에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를 입력하면 비슷한 노래를 선택해서 들려준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 내가 그런 목록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 들려줄 수도 있다. 직접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이 추천이 간단하게 이뤄진다.

개인주의 문화라고 해서 소통하려는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통이 인터넷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뤄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추천하는 문화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하다. 추천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국은 추천이 사람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미국은 통계나 기계에 의존해서 이뤄진다.

미국 최대의 음악사이트 아이튠스가 지니어스라는 서비스를 얼마 전에 시작했다. 쉽게 말해 노래 추천 서비스다. 지니어스는 고객이 구입한 노래를 바탕으로 비슷한 취향의 노래를 골라준다. 미국에서 추천 서비스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추천 서비스가 더욱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바로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통해서 구매하는 경향이 늘어나니까 기업들이 더욱 투자하게 된다. 나도 추천서비스에 중독되어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기도 했다.

미국의 추천문화는 개인주의와 기업의 판매전략이 적절히 만나서 이뤄진 합작품이다. 미국은 역시 소비의 천국답다. 돈 많은 사람들이 쇼핑하고 즐기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가 되니 저런 추천서비스도 쓸데가 없다. 그림의 떡처럼 군침만 흘릴 뿐이고 더군다나 허기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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