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거짓말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올라간 고양이를 상상해보라. 지붕에서 뛰어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강하겠지만 그 고양이는 진흙탕 바닥으로 내려오기도 싫다. 그냥 참으면서 지붕 위에서 지내는 법을 터득하려고 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메기(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처지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녀는 가난한 집의 출신으로 가난한 삶이 지긋지긋해서 부잣집으로 시집오지만, 남편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녀는 외롭지만,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참고 지내고 있다. 거짓과 위선으로 이뤄진 부잣집에서 사는 메기는 시간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양철 지붕이 점점 참기 힘들다. 하지만, 메기는 양철 지붕 같은 부잣집의 분위기보다 진흙탕에 뒹구는 삶을 더 싫어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게 그녀의 신분 상승 욕망이다.

1950년대의 동성애

이 영화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하루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 하루 사이에 가족의 감춰진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고 갈등으로 치닫는다. 인물 사이의 갈등은 대사와 행동 그리고 상징으로 잘 표현되었다. 다만 희곡에 중요한 요소였던 동성애가 영화로 각색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이것 때문에 이야기가 약간 느슨하게 고리가 풀린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이 영화는 고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동성애는 가장의 암 선고와 더불어 핵심이 되는 비밀이다. 브릭(폴 뉴먼)은 자신의 친구 스키퍼의 죽음을 아내 매기 탓으로 돌린다. 아내보다 스키퍼를 더욱 그리워하는 마음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로 인해 술에 찌들어 삶을 포기한 듯 살고 있다. 원작보다 완화된 표현의 동성애는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치고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동성애는 말도 꺼낼 수 없는 금기였다. 게다가 이 영화의 배경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남부의 미시시피주다.

브릭은 이 집안의 둘째 아들로 큰아들보다 더 신뢰받고 있다. 집안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성적 정체성도 드러낼 수 없다. 결혼도 동성애를 위장하기 위해서 했다. 동성애라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거짓말로 자신을 위장해야 했던 브릭도 뜨거운 양철 지붕에 올라간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처지다.

허망한 아메리칸 드림

‘빅 대디’는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적 인물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곤 가방과 유니폼뿐이었던 그는 혼자의 힘으로 거대한 사업에 성공한다. 빅 대디는 그 이름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크게 성공한 아버지이다. 영화 속에서 정확한 이름조차 언급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을 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빅 대디의 주변에는 진실한 인간관계보다 더 많은 재산을 얻어내기 위해서 거짓말과 아부를 하는 인물들만 가득하다. 특히 큰아들 부부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다. 작은아들을 편애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아서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큰 성공을 향해서 달려온 빅 대디는 암 선고를 받고 죽을 운명이다. 가족에게 돈만 벌어다 주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빅 대디는 지하실에서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홀로 모르핀 주사를 놓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비참한 최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전리품처럼 사다 모은 물건이 가득한 지하실에서 빅 대디는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브릭은 이런 물건이 무슨 소용이냐며 다 부순다.

결국 돈으로 이뤄진 거짓된 관계가 바로 아메리칸 드림의 진짜 모습이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아메리칸 드림의 가족은 거짓으로 뭉쳐진 집합체에 불과했다. 자식이 없는 매기는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브릭은 성적 정체성을 감추고, 빅 대디는 끝까지 강한 아버지로 남아있으려 한다. 큰아들은 재산보다 아버지의 인정이 더 소중했다고 거짓말한다.

이런 거짓으로 이뤄진 가족은 바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있는 고양이와 같다. 이 영화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미묘하게 줄타기한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뜨거움을 버티고 있는 수많은 고양이의 공격적인 눈빛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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