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도전

미국은 버락 오바마를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예상해서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지 의문스러웠다. 극우로 치닫고 있던 미국 정치 환경 속에서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200여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에게 오바마는 확실히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위험한 오바마

선거 당일까지 뉴스 채널에서 매케인을 지지하는 단체가 내보낸 광고에서 오바마는 너무 급진적이고 너무 위험한 인물이니 뽑지 말아야 한다고 그렸다. 이 모습이 바로 미국 보수층이 바라보는 오바마의 모습이다. 뉴욕타임스가 인터넷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당선에 대한 심정을 물었을 때, 매케인 지지자들은 두렵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정치적 성향은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는데도 세라 페일린이 그랬듯이 그를 서슴없이 ‘사회주의자’로 단정 짓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보수주의자들 눈에는 오바마가 빨갱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념이 아닌 경제 문제로 결정되었다. 공화당이 끝까지 밀어붙인 색깔 논쟁에 유권자들이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도 경제 때문에 오바마를 선택한 사람도 상당하다. CNN이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투표를 결정한 이유의 첫 번째가 경제였다. 테러리즘을 걱정한 사람은 경제의 6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인들에게 이념은 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지금 닥친 미국의 경제위기가 대공황 다음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부시가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늪도 무시 못 할 이유다. 부시의 정책에 실망한 미국인들이 변화의 구원자로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선택한 것이다. 변화를 바라는 다양한 계층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시대가 되었다.

나는 오바마가 수많은 요구를 받아들여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우선 변화를 바라지 않는 절반에 가까운 매케인 지지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들의 반발이 절대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층은 오바마의 정책을 위험한 사회주의 발상이라고 몰아세울 것이 분명하다.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자와 대기업은 소득의 재분배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다수당을 확보한 민주당의 후원으로 오바마가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추진할 조건은 마련되어 있다. 민주당이나 오바마가 어느 정도의 변화를 원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워낙 보수화되어 있는 미국 정치의 현실을 고려할 때 그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변화의 화신이 될 것인가

변화가 미미할 때 오바마를 지지했던 진보층이 등을 돌릴 가능성도 높다. 그런 상황이 되면 오바마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보수층이 다시 힘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오바마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흑인도 오바마가 흑인 인권을 개선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돌아설 수도 있다. 60년대 인권운동으로 상황이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미국의 흑인은 보이지 않게 차별받고 있다. 눈에 보이는 흑백 분리 정책은 사라졌지만, 흑인은 여전히 정치적, 경제적 약자다. 오바마는 흑인의 인권 문제를 그의 선거운동의 중요한 의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흑인 인권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진보적인 면이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이 지금처럼 진보적 정체성을 가지게 된 순간이 있다. 1964년 민주당 출신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에 서명한 순간이다. 이 법은 공공장소에서 흑백인종의 분리를 금지한 법안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남부에서 흑인과 백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살았다. 흑인은 백인과 다른 병원에서 태어나서, 다른 학교에 다니고, 다른 묘지에 묻혔다. 민권법이 처음 도입될 때 분리주의자들의 엄청난 반발이 이어졌고 남부의 보수주의자들은 그 이후부터 공화당을 보수의 대표로 삼았다. 그 결과 빨간 주와 파란 주로 그어진 요즘에 볼 수 있는 정치적 지도가 형성되었다.

진보적 성향으로 거듭난 민주당이었지만 레이건의 보수적 공화당과 경쟁하면서 그 색깔도 점차 흐려졌다.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는 공화당에 버금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노조를 탄압했고 기업의 탈규제와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부시처럼 노골적이고 강경하게 하지 않았을 뿐이지 클린턴은 보수적으로 미국과 세계를 통치했다. 양당체제 속에서 진보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오바마의 등장으로 진보가 다시 환영받는 시대가 올 것인가. 오바마의 정치적 입장이 이미 오른쪽으로 가 있는 상황인 데다가 그것마저 우파와 협상을 거치면서 더 오른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오바마도 위험한 인물로 보는 절반의 미국인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가 얼마나 더 개혁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그가 대선 기간에 보여준 정책은 그다지 개혁적이지 않았다.

오바마의 뛰어난 토론과 연설처럼 대통령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현실에 놓인 장벽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투표권도 없는 외국인의 심정으로 바라본 미국의 대선이지만 오바마 현상은 대단했다. 마치 록스타에 열광하듯 오바마에게 희망을 찾으려는 미국인을 보면서 과연 저 기대를 다 충족시켜주려면 오바마는 슈퍼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정치, 경제적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하고 국민의 높은 기대까지 다 해결할 수 있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부시에 대한 실망으로 뽑은 한 명의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오바마가 보여줄 변화가 실망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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