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법에 숨은 의도

최진실의 자살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최진실 자살을 둘러싼 정치권의 정략적 움직임이다. 한나라당은 ‘최진실법’을 제정해서 사이버 모욕죄로 악성 댓글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법의 취지나 의도도 그럴싸하게 꾸몄지만, 한나라당이 말한 대로 최진실법이 만들어진다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최진실이 자살하기 이전 지난 7월부터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최진실법의 다른 이름인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사이버 모욕죄는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촛불집회와 여당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댓글을 겨냥한 법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연예인의 인격과 자살을 막기 위한 논리로 바꾸고 있다. 최진실의 자살에 대한 동정 여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기존에 추진하려던 사이버검열을 강화하겠다는 소리다.

사이버 모욕죄가 신설되면 고소, 고발 없이도 검찰이나 경찰이 자유롭게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모욕’을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정치적 비판 댓글까지도 처벌할 수 있는 심각한 악법이 될 수 있다. 야당, 시민단체, 개인의 정당한 표현까지도 문제 삼을 수 있는 엄청난 권리를 수사기관에 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원하던 인터넷 언론통제의 염원을 이루는데, 한 발자국 나아가게 된다.

이 법이 신설되면 사이버 모욕죄는 개인적 분쟁의 영역인 친고죄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영역의 문제가 된다. 모욕을 받았을 당사자의 의견과 상관없이 국가가 나서서 모욕을 관리하고 통제하게 된다. 사이버 모욕이 국가의 정체성에 도전할 정도로 심각한 범죄란 말인가?

한나라당은 사이버 언론을 통제하려고 인기 배우 최진실의 자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진실 자살의 원인을 악성 댓글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 윤상현 대변인도 “사이버 테러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처럼 유명무실했던 현실은 탤런트 최진실 씨 자살 사건을 계기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의 악플을 막기 위해 전체 댓글을 검열하려는 것은 발생하지도 않은 범죄를 막으려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적 글이 늘어나는 인터넷을 통제하기 위해 불행한 여배우의 자살을 또 한 번 희생시킨 것이다. 익명성에 기대어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악성 댓글에 대한 조치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상식적 댓글까지 통제당할 여지가 농후한 법 제정은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인터넷 실명제 추진과 사이버 모욕죄을 비롯한 인터넷 여론통제로 연예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악법으로 연쇄 자살을 막았다고 해도 그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전체주의적 감시 사회에서 숨 막힌 또 다른 자살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사생활에 해당하는 모욕을 국가가 과연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모욕은 그걸 당한 사람이 판단할 영역이지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서 감시할 영역이 아니다. 인기 연예인의 미니홈피를 국가기관이 감시해야 할 정도로 한국은 불안한 사회인가. 현행법으로도 악플을 처벌할 수 있는데도 사이버 모욕법까지 추가로 제정하려는 것은 정부에 대한 모욕을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죽은 최진실로 한나라당의 정치적 저의가 감춰지길 바랐다면 비겁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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