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선에 이어 올해 총선도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된다. 대운하 반대를 중심으로 반한나라당 전선이 형성되고 있지만 큰 반향은 없다. 사실 대운하만큼 심각한 문제는 의료체계의 변화다.
이명박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부터 시작해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의료보험은 국가 의료보험체계를 버리고 미국식 민간의료보험 체계가 되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런데 의료보험 문제는 총선에서 이슈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큐멘터리 ‘식코’의 개봉은 상당히 의미 있다. 여당이 추진하려는 의료보험 민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이 영화를 보면 그 실체를 잘 알게 된다.
보험이 있어도 어려운 현실
영화 ‘식코’는 미국 의료보험의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한 통쾌한 다큐멘터리다. 3억 인구 가운데 5천만 명이 의료보험 없이 살아가는 나라가 미국의 오늘이다. ‘식코’는 의료보험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바로 의료보험을 가진 2억 5천만 명의 미국인에 관한 영화다.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는 사람의 어이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50대 중년 부부 래리와 다나는 각각 심장병과 암을 앓고 있다. 둘 다 민간 의료보험도 있고 직장도 있다. 하지만 의료보험 회사가 치료를 거부해서 집도 팔고 오갈 때가 없어서 딸의 집 지하실 방으로 이사해야만 했다. 이들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어떤 부부는 어린 딸이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보험회사가 지정한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3시간 걸려서 다른 병원으로 갔더니 치료가 필요 없다고 해서 결국 치료받지도 못한 채 품속에서 죽어갔다.
‘식코’에는 이런 억울한 환자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마이클 무어는 보수층의 미움을 받을 정도로 선동적인 좌파 운동가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보수층에게도 공감을 받고 있다. 진보나 보수 모두 아프면 병원에 가야만 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질병과 사고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아주 극빈층이나 노년층에게는 빈곤층 의료보장이나 노인 의료보장을 제공하는 체계이다. 이런 기형적 구조 때문에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의료기관은 의료제도 개혁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으로 막는 데 힘을 쏟는다. 수많은 로비자금과 광고로 정치인들을 줄 세운다.
대부분 사람은 민간의료보험으로 치료를 받는데 보험사들이 어떻게 해서든 치료를 못 받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치료법은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못 받게 하고, 환자의 아주 사소한 병력까지 찾아서 보고하지 않았다고 치료를 거부한다. 실제로 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어떤 암환자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보험회사와 싸우다 죽었다.
칸에 간 마이클 무어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누구죠? 우리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 있나요?”
환자를 치료해야 할 병원, 보험회사, 의료기관이 수익만 바라면서 환자를 내팽개친다. 이런 비참한 현실에 대해 마이클 무어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쏘아붙인다.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를 길바닥에 버리는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에게 보너스를 주는 의료보험회사는 영혼이 없는 장사치에 불과하다.
‘식코’는 의료보험 시스템을 엄밀한 학술적 잣대로 평가하는 작품이 아니라서 비교가 정확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식코는 영국, 프랑스, 캐나다. 쿠바의 국가 의료보험을 유토피아처럼 표현한다. 다소 과장된 시선이지만 미국보다 더 나은 시스템임은 분명하다. 미국에 비해 이들 나라의 수명도 길고 영아사망률도 낮으며 의료비도 낮은 편이다.
미국은 2004년 현재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을 15%가 넘게 지출하면서도 국민 건강은 형편없다. 얼마나 비효율적인 시스템인가. 미국 의료계는 로비자금, 광고비, CEO 월급 등에 의료비를 마구 쓰면서 정작 국민 건강을 위해서 지출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사회주의 혹은 국가 의료보험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 취급을 당하고 그런 시스템은 의료서비스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못된 제도라고 못 박는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자유는 별로 없다. 미국의 의료체계에서 부자는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VIP 대우를 받으며 치료받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의료보험 가입도 거부당하거나 형편없는 병원에서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한다. 억울하면 돈 벌어서 좋은 의료보험 사서 좋은 병원에 가라는 식이다.
미국식 민영모델을 따라야 하나?
이 영화에서 고발하는 미국식 의료보험제도를 현재 한국 정부가 채택하려고 한다. 미국도 병든 의료제도를 고치기 위해서 전 국민 의료보험을 고려하고 있다. 수많은 환자의 희생을 통해서 의료제도 개혁에 나선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려는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영화다. ‘식코’ 보기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의료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의 권리다.
미국에 나와보니 한국 의료보험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값싼 학생 의료보험에 가입하니 갈 수 있는 병원도 몇 개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의사도 엉터리가 많아서 가는 병원마다 다른 처방을 내려줘서 더 신뢰가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돈으로 위계가 정해진다. 부자의 병원과 가난한 자의 병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환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환자를 소비자라고 정의하는 순간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은 소비자가 될 수 없다. 소비자는 가난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표현이다. 돈이 없으면 치료도 받지 말고 조용히 죽으라는 제도가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 의료제도 안에서 환자는 죄인 취급을 받는다. 보험회사는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전담 조사관이 기록을 뒤져서 보험계약 위반으로 몰아서 자격을 박탈한다. 사고나 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 데, 마치 처벌하듯 질책당하고 혜택을 박탈당한다. 의료는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기 위한 제도이지 처벌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이 영화에 삽입되지는 못했지만 마이클 무어가 찍은 영상 가운데 한 신부가 미국 의료보험제도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부분이 나온다. 예수가 만일 지금 미국 텍사스주 남부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만일 다치거나 병들면 세상을 구할 생각도 못 하고 의료제도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의료제도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미국식 의료제도보다 훨씬 나은 편이다.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 잘못된 부분만 조금씩 고쳐나가면 된다. 하지만 국가 의료보험 버리고 시장으로 가겠다는 것은 환자를 죽음으로 모는 위험한 정책이다. 심각한 질병까지도 돈으로 차별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노르웨이, 프랑스, 영국 등 유럽식 모델로 가야 한다.
비인간적, 비효율적 미국식 제도는 한국 의료의 미래가 아니다. 회사 이익이나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최대의 목표인 민영 보험회사는 괴물처럼 미국인 환자를 오히려 괴롭히고 있다. ‘식코’가 한국 의료제도의 슬픈 미래가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