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배우가 석권한 80회 아카데미

작가 파업의 여파 탓인지 올해 시상식은 그다지 화려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밋밋했고 존 스튜어트의 진행도 심심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재치는 없었지만, 안정적인 시상식이었다. 특히 80회 기념으로 1회부터 79회 작품상을 받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80회 오스카의 독특한 점은 우선 배우상이 모두 유럽 출신 배우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여우주연상은 영화 ‘라비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연기한 프랑스 배우 마리온 꼬띠에르가 받았다. 영어가 아닌 영화의 여배우가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1961년 ‘두 여인’의 소피아 로렌 이후 두 번째다. 남우주연상은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탐욕스러운 석유업자로 나온 영국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받았다. 최근 다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다시피 해서 예상된 결과였다.

여우조연상은 ‘마이클 클라이튼’의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이 탔고, 남우조연상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열연한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가져갔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영어로 수상소감을 말하다가 다시 스페인어로도 감사의 말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할리우드 전성기와 비교해서 최근에는 쓸만한 미국 배우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연극 전통이 강한 영국의 배우들이 무대에서 훈련된 연기력으로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민으로 이뤄진 나라답게 미국은 배우들 수입에도 적극적이다.

특정한 영화 하나가 오스카를 석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80회 오스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등 주요 부문상을 가져갔다.

전 세계에 주목을 받는 오스카 시상식에 가끔 재미를 던져주던 정치적이거나 논쟁적인 수상소감은 없었다. 존 스튜어트가 힐러리와 오바마를 정치적으로 풍자한 코미디가 전부였다.

드디어 오스카가 토니 시상식을 모델로 삼아 공연의 질을 높였다. 주제가 부문 후보에 오른 곡들을 영화 속 장면 그대로 재현했다. 주제가상은 영화 ‘원스’의 ‘Falling Slowly’에게 돌아갔다. ‘마법에 걸린 사랑’은 무려 세 곡이나 후보로 올라서 오스카 시상식의 공연을 빛내주는 거로 만족해야 했다. 여러 곡이 한꺼번에 수상후보로 오르면 표를 나눠가져서 상을 받기 어렵다. 물론 ‘원스’의 노래도 충분히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글렌 한사드의 기타 연주와 마르케타 이르글로바의 피아노 연주는 거리 음악가가 함께 음악을 만드는 ‘원스’처럼 잘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가장 어색한 순간이 한 번 있었다. 주제가상을 받은 글렌 한사드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마르케타 이르글로바에게 마이크를 내주었는데 시간을 초과했다고 오케스트라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내몰리듯 마르케타 이르글로바는 수상도 말할 기회를 놓쳤는데, 다행히 존 스튜어트가 다시 기회를 줘서 소감을 마칠 수 있었다.

외국어 영화상은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오스트리아 영화 ‘카운터피트’가 받았다. 역시 오스카는 유대인 소재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었다.

이번 오스카 시상식을 통해 평소에 궁금해하던 걸 알게 되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오스카 중간에 광고가 끼어든다. 한국과 달리 미국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은 5~10분마다 광고가 삽입된다. 그걸 존 스튜어트가 자상하게 설명해줬다. 스타들도 시청자들처럼 광고시간에 화장실도 가고 서로 잡담을 주고받으며 프로그램이 시작되길 기다린다고 한다. 광고 방송을 하는 동안 스타들은 무얼 할까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알겠다.

흥행에 성공한 ‘주노’는 디아블로 코디가 각본상을 받는 게 전부였다. 언제부터 오스카가 흥행과 무관하게 상을 주게 되었나. 보수적인 오스카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올해로 80살이 된 오스카가 다시 젊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오스카 시상식도 점점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시청률도 몇 년째 계속 떨어지고 있고 올해도 되돌리기 힘들 것 같다. 오스카 시상식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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