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저녁노을이 아주 변화무쌍해서 볼 만하다. 내게 노을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대입에 실패하고 그 당시 유행처럼 생겨난 기숙학원에서 재수하던 때였다. 아침 행군으로 하루가 시작되었고 취침하기까지 모든 생활이 학원에서 이뤄졌다. 외출은 한 달에 한번 집에 다녀오는 게 다였다.
그런 무료한 일상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저녁 먹고 학원 옥상에 올라가서 노을을 구경하는 거였다. 붉게 번지는 노을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넋을 놓고 보다 보면 금세 해가 넘어가곤 했다. 그 느낌은 매일 조금씩 달랐다. 노을이 내 붉은 한숨이라 느끼기도 했었다.
학원에 있는 곳은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학원 옆으로 오염된 개천이 흘렀고, 근처에 섬유공장과 시장도 있었다. 어쩌면 그 노을이 아름다웠던 이유도 대기 오염의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지저분한 풍경도 노을 아래서 보면 근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 시절 노을은 눈물이 나게 예뻤지만 우울했었다. 요즘 내가 보는 노을은 그런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차가운 겨울 날씨와 대비되어 따뜻한 모닥불 같다. 사람의 마음은 변덕이 심하다. 같은 노을이지만 그때그때 마음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보이는 걸 보니. 노을을 추억하니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듣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