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나오니 한국의 그리운 것도 참 많다. 며칠 동안 노래방에 가고 싶어서 혼났다. 미국도 엘에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 살면 한국 부럽지 않게 노래방도 쉽게 갈 수 있을 텐데, 여기는 시골이라 노래방 비슷한 것도 없다.
처음 노래방에 가게 된 기억이 떠오른다. 1990년대 초반 서울 노량진 근처였다. 그때는 동전을 노래방 기계에 넣으면 한 곡씩 부를 수 있었다. 동전을 잔뜩 바꿔서 목이 쉴 때까지 노래를 부르면 스트레스가 좀 풀렸다.
어떤 노래방은 뮤직비디오 비슷한 화면이 나오기도 했다. 아마 노래방용으로 따로 제작한 것 같은데, 노래에 해당하는 뮤직비디오를 삼류 배우들이 직접 찍었다.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그때는 굉장히 열심히 봤다. 그런 뮤직비디오 출신 중에 탤런트가 나오기도 했다.
한때는 컴퓨터에 설치된 노래방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나도 한동안 재미 들려서 열심히 해봤는데, 역시 노래방 성능을 따라오지 못했다. 집에서는 노래방처럼 마음껏 목청을 높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쉽게 잊혔다.
전화 노래방도 한동안 번성했었다. 전화 요금이 얼마나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쓰다가 부모님께 굉장히 혼났었다.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화기를 꽉 붙잡고 열성을 다해 노래하는 걸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보통 술을 마시면 노래방을 거쳐 가는 게 한국 주류 문화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술을 마시지 않고 맨정신에도 자주 갔었다. 다행히 대학 다닐 때 나처럼 노래방을 아주 사랑하는 선배가 한 명이 있었다. 그 선배랑 나는 대낮에 노래방에 가곤 했다. 낮에 가면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시간도 많이 줘서 그 맛에 더 자주 갔다. 우리는 목이 다 쉬도록 노래 부르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지만 나는 그다지 레퍼토리가 다양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곡이 나오면 따라서 해보려고 시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것도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내 취향이 아닌 노래들만 나오자 시들해졌다.
노래방에 가면 기분 내키는 대로 노래를 부르는 편이지만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들은 거의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유행한 곡들이다. 그 시기의 노래들이 특히 명곡이 탄생한 시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때가 내게 애틋한 시기여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마다 애창곡이 있을 것이다. 나의 십팔번은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다. 고등학교 때 유행한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라디오에서 방송한 곡을 테이프에 녹음해 늘어질 때까지 들었고 내 머리에 아예 각인되었다.
최호섭은 이 노래 이외에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태권브이 주제가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라 태권브이~” 최호섭의 아버지가 바로 이 노래를 작곡한 최창권이다. 최호섭과 더불어 노래방에 자주 불렀던 가수는 조하문인데 유튜브로 찾아보니 이건 없었다.
노래방에 가고 싶은 심정을 이렇게 블로그 글로 달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지난여름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노래방에 다녀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사람은 자고로 기회가 있을 때 즐겨야 한다.
미국 대중문화에서도 노래방 비슷한 것이 나온다. 한국처럼 방에 들어가 부르는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노래 부른다. 그래서 노래를 정말 잘하지 않는 사람이 나서기는 어렵다. 미국 노래방 문화는 한국 사람들 정서에는 좀 안 맞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의 노래방이 더 마음에 든다. 노래방에 들어가면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자기 기분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게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다 날아갈 것 같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방에서 마음껏 고래고래 노래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