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은 영화사에 등장했던 다른 첩보 영웅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우선 첩보영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는 제이슨 본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인물이다.
제임스 본드는 첩보 기관이 부여한 임무를 충성스럽게 완수하는 일급 스파이다. 제임스 본드는 조직에 고분고분하게 따르지는 않지만, 조직에 해를 전혀 가하지 않는다. 반면 제이슨 본은 자신을 만들어준 조직을 파괴하는 위험한 스파이다.
제이슨 본은 총상과 충격으로 자신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렸다. 뜻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제이슨 본은 자신의 정체를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만든 조직의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냉전체제의 산물인 제이슨 본은 복종하는 기계에서 사고하는 인간으로 거듭난다. 자신을 죽이려는 조직에 맞서면서 서서히 조직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왜 죽여야 하는지 모른 채 암살해 온 킬러가 그 총을 조직을 향해 겨눈다.
제이슨 본은 자신의 정체를 찾는 과정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회의하고 성찰하는 본의 시선으로 첩보 기관을 바라본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암살을 자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암살당한 가족의 짓밟힌 행복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첩보전에 희생당한 인권은 수도 없이 많다.
조직을 굴러가게 한 부속품에 불과하던 제이슨 본은 내부고발자의 길을 걷는다. 각성한 자아는 자신의 정체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한 조직의 정체도 속속들이 파헤친다. 다급해진 조직은 자신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기 전에 각성한 조직원을 죽이려 든다.
쓰레드스톤, 블랙프라이어라는 조직은 거대권력의 은유로 볼 수도 있다. 거대권력은 최첨단 무기와 기술로 개인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제이슨 본은 이런 감시의 눈을 교묘하게 피해 나간다. 광장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시선을 벗어나 유유히 사라지는 제이슨 본은 아주 통쾌하다. 하지만 감시카메라의 눈을 피하는 일을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개인과 조직의 싸움에서 개인이 승리하는 모습이 바로 제이슨 본이다. 제이슨 본은 조직의 기술력과 겨루지 않는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킬러들을 맨손이나 주변 사물을 이용하여 무너뜨린다. 제이슨 본은 기술을 무력화시킴으로 조직을 조롱하기도 한다. 거짓 위치로 조직원을 유인한 뒤 제이슨 본은 유유히 조직의 본부에 잠입하여 필요한 정보를 캐낸다. 추적 기술을 맹신한 결과로 조직이 당했다.
마지막 3탄에서 본은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조직을 완전히 와해시킨다. 본 시리즈가 과연 완결된 것인가? 성찰적인 킬러의 자화상을 보여준 제이슨 본이 살아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