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상가나 작가들 가운데 침대에서 글을 쓴 사람들이 있다. 마크 트웨인, 루소, 밀턴 등이 침대에 주로 글을 썼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데카르트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정말이지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이다. 말랑말랑한 침대에 누우면 잠에 곯아떨어지는 나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침대는 잠자고 휴식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이들에게 침대는 사고의 장으로 톡톡히 역할을 했다.
그 작가들의 침대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내게도 있다. 바로 욕조다. 욕조는 나에게 안식처이며 생각을 자극하는 곳이다. 가끔 마른 욕조에 누워서 머리를 식히거나, 생각이 막혀서 멍할 때 그만한 곳이 없다. 지금 사는 집의 욕실에는 창문이 없다. 그래서 욕실 문만 닫으면 암실이다. 어둠 속에서 잡생각으로 샘솟을 때가 있다. 욕조 안의 물이 수챗구멍으로 빨려 나가듯, 잡념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하다.
아내는 가끔 빈 욕조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엉뚱하다고 놀리지만, 나에게 욕조는 생각이 샘솟는 우물이다. 욕조는 본래 목욕이나 샤워를 위한 공간이다. 내 경우는 이런 목적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앞서 말한 작가들도 침대를 서재로 바꿔쓰고 있다. 원래의 목적을 일탈한 공간인 셈이다. 이게 내가 발견한 욕실의 효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