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잔디 가꾸기가 점점 ‘꺼림칙한 즐거움'(Guilty Pleasure)이 되어간다고 했다. 왜냐하면, 잔디를 가꾸기 위해서 각종 제초제와 비료를 써서 땅이 황폐해지고 물이 더러워지고, 잔디깎이 엔진에서 나오는 매연가스가 대기를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눈에 즐거움을 위해서 희생당하는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미국 사람들의 잔디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개인 주택가를 가끔 산책하다가 잘 가꾸어진 잔디에 감탄하곤 했다.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에 촉촉이 젖은 잔디는 매혹적이다. 부유한 주택지구로 들어가면, 동네 전체가 잘 다듬어진 정원을 연상시킨다. 잡초 하나 없이 잘 정돈된 잔디밭은 미국 주택가 전형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자연을 파괴해가면서, 그런 즐거움을 누려야 할지 의문스럽다. 미국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과정에 자연이 볼모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 초록이 예전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잔디깎이에서 나오는 매연은 자동차 배기가스보다 훨씬 심각하게 공기를 파괴한다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는 좀 유별나게 환경에 관심이 있다. 시 정부에서 재활용 정책을 다양하게 실시하여, 재활용 모범도시로 뽑힌 경력도 있다. 그리고 대학에도 환경 저널리즘, 환경경영에 초점을 맞춘 과도 여러 개 있다.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가 있어서, 매년 자동차 배기가스도 점검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잔디깎이까지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는 거 같다.
잔디가 주는 즐거움, 잔디를 가꾸는 취향을 포기할 수 없다면, 같이 살아가는 법을 모색해야 한다. 실제로 배기가스의 피해를 줄여주는 잔디깎이가 시장에 나와 있지만, 잘 안 팔린다고 한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 사회적 비용에 대한 필요성이 아직 미숙하다. 최근 미국의 환경문제에 관련된 행보는 무척 실망스럽다. 환경협약에도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기업의 이익만 챙기는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 어떤 환경정책을 내놓을지 의심스럽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잔디 가꾸기가 언제부터 한국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가진 거 같지는 않다. 과거 한국의 정원은 인공적인 잔디 가꾸기에 치중한 거 같지 않다. 일부 문헌에 따르면, 자연적 미를 강조하기 때문에 인공적 냄새가 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잔디에 얽힌 기억은 학교에서 잡초를 뽑고, 잔디를 봉투에 담아 가져가는 약간의 강요된 일이라 별로 즐겁지 않다. 인공적인 초록을 가꾸기 위해서 학생들의 노동이 마구 투입되었다. 자연을 그대로 즐기기보다, 사람의 힘으로 눈에 즐겁게 가꾸는 자연의 근대화 과정이 아닐까? 잔디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전에, 미적 즐거움과 사회적 비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