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기의 즐거움

대학 시절 소설을 무진장 많이 읽었다. 정말 닥치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읽었다. 황석영, 홍명희, 이문열, 이청준, 하루끼, 밀란 쿤데라, 도스토옙스키, 김승옥, 은희경, 박경리 등이 지금 당장 생각나는 작가들이다. 그 외에도 재미있을 만한 작품은 손에 잡으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밤을 새워가며 읽고, 기억날만한 문구는 여기저기 끄적이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 그게 소설보다 영화가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허구보다 논픽션에 더 끌렸을 수도 있다. 환상적 세상에서 그 캐릭터랑 대화하며 지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모르겠다. 그때는 소설에 탐닉한 시간이 현실도피처럼 느껴졌나보다. 아마도 현실과 허구 사이에 균형을 잃어버렸던 거 같다.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의 책이 집 안에 있길래 재미 삼아 보기 시작했다. ‘그 남자네 집’이란 소설인데, 1950년대의 첫사랑 이야기 진솔하고 정감있게 다가왔다. 다른 소설도 찾아서 읽어보려고 했지만, 외국에서 한국소설 구하기는 정말 어렵다.

근데 영어소설을 읽는 것은 고역이다. 소설에서 그리는 상황도 익숙하지 않고, 모르는 단어도 많으니까 몰입이 잘 안 된다. 그나마 좀 익숙한 작가인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어봤는데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사람이 단순해서인지 복잡한 글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류였다. 전개가 빠르고, 이야기 전개가 명확한 글이 나의 취향인가. 어제 헌책방에 갔다가 존 스타인벡과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을 좀 사 왔다.

미국 친구가 추천해준 존 스타인벡의 책 한 권을 운좋게 구했다. 작가가 챨리라는 개와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생긴 일을 그린 거라고 한다. 여행기는 언제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고, 스타인벡이 적은 여행기는 어떤 걸까 궁금하기도 하다. 챈들러는 하루끼가 좋아하던 작가라서 비슷할 거 같아서 골랐다. 서론만 보았는데도 둘의 스타일이 무척 닮았다. 짧은 문장 안에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지루한 논문을 쓰는 과정에 소설 속 친구들이랑 좀 놀아봐야겠다. 오랜 친구를 다시 찾은 기분이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사는 게 사는 재미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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