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의 영웅 하인즈 워드는 한국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하인즈는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프로야구 시구까지 바쁜 일정을 수행했다. 미식축구가 전혀 인기가 없는 한국에서 하인즈는 국민적 영웅이었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의 혼혈이 처한 상황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인 정동영은 혼혈이란 말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했고, 혼혈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람직한 주장이고, 앞으로 한국사회가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순수혈통을 지향하는 풍토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인즈의 열풍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미국 사회에서 혼혈의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혼혈 중에 흑인에 대한 차별은 유별나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 흑인이 타 인종과 결혼하는 사례는 전체 흑인 가운데 2%에 불과하다. 그것도 60년대 0.5%에 비해서 많이 오른 통계라고 한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게 흑인과 백인의 결합이다.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같은 대스타 흑인 배우조차 백인 여성과 데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살인협박,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백인과 흑인사이의 결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60년대에서 별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흑인과 백인 커플은 미디어의 대단한 관심사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한다는 소리다.
박사과정 친구 가운데 흑인 여학생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미디어 보도를 다룬 리서치 여행을 다녀왔다. 사회학과 백인 남자와 같이 뉴올리언스에 다녀왔는데,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을 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둘이 커플도 아닌데, 사람들이 커플로 보면서 대놓고 무시했다. 심지어 식당에 들어가서 밥도 못 얻어먹고 쫓겨나기도 하고, 백인 노동자들이 둘을 향해 야유를 퍼붓기도 했단다.
미국 사회의 인종 간 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러하다. 동네가 남부이다 보니 그런 노골적인 차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그 친구가 말했다. 그 친구의 논문의 주제도 인종간 커플, 특히 흑인과 백인의 결합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시선이다.
몇 년 전 한국 연예인 중에 자신의 혼혈을 숨기고 활동하다가 나중에 고백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윤수일, 인순이는 혼혈의 차별을 몸소 감수하면서 활동해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혼혈에 대한 차별은 하인즈 열풍으로는 쉽게 잠재워지지 않을 것이다.
혼혈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막을 보호장치도 없고, 법적 권리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단순히 혼혈이라는 말을 없애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다가왔다가 쉽게 사라지는 바람이 아니라, 늘 흐르는 강물처럼 혼혈 인종주의의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