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가 뭐길래, 올해도 텔레비전으로 봐버렸다. 정작 영화는 다 보지도 못했지만, 이거 끝났으니 그중에 몇 편 골라서 봐야겠다. 오스카 시상식 후에 대대적으로 오스카 프리미엄으로 흥행을 누리려는 영화들이 영화관에 자주 걸리니까, 상영 극장 찾기위해서 힘들일 필요는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7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켜봤다. 오스카 자체의 보수적인 성향을 여실없이 보여주는 한해였다. 동양인 최초로 앙 리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감독상을 받았다는데 의의를 부여하였지만, 최근의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결과였다. 오스카가 그나마 최근에 흑인들에게 수상의 기회를 준 것을 생각하면, 동양인에게도 역시나 인색하였다. 할리우드의 주류는 역시 ‘백인’이란 걸 실감하게 하는 자화상이다.
앙 리의 개인적 궤적을 살펴보더라도 할리우드가 다른 인종에게 얼마나 살아남기 힘든 곳인가 알게 된다. NYU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스파이크 리의 조감독도 맡았지만, 데뷔는 미국이 아닌 앙리가 태어난 대만에서 해야만 했다. 앙리가 할리우드에 들어와서는 액션 영화인 ‘헐크’나 ‘와호장룡’같은 중국무협이나 심지어 영국의 역사극인 센스앤 센서빌리티같은 영화를 만든 경력이 예사롭지 않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경력이 자신의 다양한 관심사와 능력을 보여주는 단면일수도 있지만, 자신의 색깔을 독자적으로 추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증거도 된다. 앙리가 대만에서 만든 ‘결혼 피로연’이나 ‘음식남녀’같은 영화는 비교적 일관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할리우드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색깔을 더 지키기 힘들어진 거다. 자막이 들어간 영화는 보려고 하지 않는 미국의 관객들이 중국인들의 전통이 담겨있는 영화를 얼마나 참고 보겠나?
정치색이 강한 영화들이 올해의 오스카를 휩쓸었다. 기자나 언론의 역할에 관한 성찰적인 시각을 보여준 ‘카포티’나 ‘굿나잇 앤 굿럭’같은 영화들도 있었고, 인종적 편견과 적대감을 다룬 크래쉬는 최고의 작품상을 타기도 했다. ‘뮌헨’은 중동의 폭력을 문제 삼고 있고,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불관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샤를리즈 쎄론이 주연한 ‘노스 컨트리’는 광산노동자들의 성추행을 다룬다. 작품상은 의외로 ‘크래쉬’에게 갔는데, 오스카는 동성애보다 인종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아무래도 오스카는 정치색이 강한 영화들 가운데 특정한 작품을 몰아주기보다는 보다 안전한 나눠주기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오스카는 레드카펫을 장식한 여배우들의 드레스를 보는 즐거움을 덤을 준다. 어떤 디자이너의 옷을 어떤 배우가 입었느냐가 최대의 관심사다. 각종 언론사이트에서 드레스에 관한 여론조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드레스 부문에 대한 시상식만 없을 뿐이지, 드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보다 중요하게 다뤄진다. 레드카펫에 펼쳐진 여배우 패션쇼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리무진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빨간 카펫을 사뿐히 걸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여배우들을 향한 디자이너들의 구애는 피튀기는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