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연구의 윤리성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의 보도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와 촛불시위로 인터넷이 들끓는다. 급기야 불매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여론에 밀려서 12개 광고주 모두 광고를 취소하였다. 이쯤 되면 정도를 지나치는 광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사건을 통해서 여론에 대한 이성적인 신뢰를 상당 부분 거두게 되었다. 과학의 기본적인 윤리 문제조차 제기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황우석 애국주의’라 할 수 있는 이번 사건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과학계 스타로 등장한 황우석에 대한 한국 언론의 태도는 열광적이다. 처음에 황우석에 대한 열광은 한국 언론이 그동안 보여준 한국적 사건을 세계적으로 만들려는 욕망이겠거니 생각했다.
뉴욕 타임스나 CNN을 비롯한 미국의 언론이 황우석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서 그게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줄기세포의 업적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보수신문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거의 획일적이었다. 물론 과학적 업적을 소개하는 것도 언론의 임무이다. 하지만 언론이 그런 역할에만 머무른다면, 연구소를 홍보하는 역할밖에 되지 않는다.
황우석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업적을 알리고, 세계 각국의 언론에서 다룬 황우석을 다시 인용하는 보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외국 언론의 보도에 드러난 한국인 황우석에 대한 자랑스러운 감정도 느낀 사람도 많았다. 특히 미국언론은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무척 놀라면서, 왜 미국의 연구소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앞장서지 못하는가? 이를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언론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여과 없이 내보면서,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주력했다. 황우석은 국가적 영웅이며, 과학 기술발전을 성숙시킨 선구자며,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후보라고 추켜세웠다. 비슷한 내용의 외국언론을 끊임없이 인용하면서 황우석 신화는 각종 언론사와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어서 제4부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언론은 과학기술에 대한 보도에서 감시의 기능을 소홀히 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상인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에 무슨 문제는 없는지 감시할 여력이 없었던 것일까?
조중동이라는 주류 신문사들이 형성해 놓은 ‘황우석 신화’라는 거대한 틀에서 벗어나기 싫었던 것일까? 언론에서 과학적 연구에 따르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윤리에 관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좀 더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하지만, 언론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 것은 분명하다.
PD수첩,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같은 언론이나 민주노동당이 제기하는 줄기세포의 윤리적 논쟁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에 편승하려는 주류언론은 비겁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다. 오히려 주류언론은 ‘국익’을 방해하려는 무리로 몰아가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인다. 언제부터 국익이 한국사회에 절대적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는 것 같다. 아무리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일이라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권장되어야 할 가치로 탈바꿈한다.
이 짧은 글에서 PD수첩 사건이 시사해주는 뿌리 깊은 민족주의, 국수주의, 근대성 등을 다 다루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을 통해 언론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되었다. 한국언론은 줄기세포연구가 가지고 있는 윤리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다루기보다는 해묵은 애국심 논쟁으로 과거지향적으로 흐르는 지금의 현상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