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연설이 노래로

그동안 나는 투표권 없는 외국인의 심정으로 강건너 불구경하듯 미국 대선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대중문화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젊은층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오바마가 이번에는 힙합 음악가의 지지를 음악으로 끌어냈다. 래퍼이자 제작자인 윌아엠(Will.I.Am)과 밥 딜런의 아들인 감독 제시 딜런(Jesse Dylan)이 오바마의 연설을 바탕으로 “Yes We Can”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가수, 운동선수, 배우 등 40여명이 이 뮤직 비디오에 참여하였다.

유튜브에 올라온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조회수가 벌써 2백만명을 훌쩍 넘었다. 예스위캔송닷컴(yeswecansong.com)에서는 천만명 이상의 사람이 다녀갔다. 이 뮤직 비디오에는 정말 쟁쟁한 연예인들이 출연했다. 오바마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영화배우 스칼렛 죠핸슨(Scarlett Johansson), 랄앤비 가수 존 레전드(John Legend),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Herbie Hancock) 배우이자 래퍼인 닉 캐논(Nick Cannon)등 유명한 연예인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뮤직 비디오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마치 밥 말리의 레게처럼 조용히 읇조린다.

게다가 이 뮤직 비디오는 오바마 캠프에서 부탁하거나 제작에 관여한 것이 아니다. 윌아이엠은 2008년 1월 8일 오바마가 뉴햄셔에서 한 연설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Yes We Can”을 제작했다. 정치 캠페인을 위해서 노래를 따로 만들거나 기존의 곡을 개사해서 쓰는 일은 허다했지만 이번처럼 자발적으로 가수가 노래를 쓰는 일은 예외적이다.

이 뮤직 비디오의 분위기는 다분히 1985년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만든 위아더월드(We Are The World)를 연상시킨다. 위아더월드는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기아에 대한 자선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사회운동을 지원하거나, 기아에 대한 구제기금, 미국 농민을 후원하거나, 남아프리카 인종분리를 반대하는 뜻을 모으기 위해서 연예인들이 자발적으로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었다. 대선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연예인이 모인 일은 거의 없으며, 이렇게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받는 일이 더 드물다.

A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윌아엠은 이렇게 말했다.

그 연설은 내가 얼마나 자유를 누리고 있나 되돌아보게 했어요. 자유롭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잖아요. 오바마 이전에 마틴 루터 킹, 아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 ABC 뉴스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죠. 그리고 오바마의 연설을 가지고 노래도 만들 수 있었어요.

윌아엠과 제시 딜런은 LA에서 “Yes We Can”의 뮤직 비디오를 찍었는데 서로 참여하겠다는 연예인들의 열기에 놀랐다고 한다. 수많은 젊은 연예인들이 그만큼 오바마 연설에 감동받았고 그 메시지를 더 널리 퍼트리는데 적극적이었다. 그들을 이토록 흥분시킨 메시지는 바로 “변화”였다. “Yes We Can”에 생략된 단어는 Change였다.

오바마는 수퍼 화요일 연설에서 다시 변화를 얘기했다. “우리의 시간이 왔습니다. 우리의 운동은 현실이며, 변화가 미국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수퍼 화요일 출구조사에서 힐러리 지지자의 절반은 “경험”을 가장 중시했고, 오바마 지지자의 3/4은 “변화”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다. 오바마는 어느새 변화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미국인들은 미국 경제의 몰락, 이라크전 실패, 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장제도 붕괴 등 고질적인 문제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이런 변화의 길을 강력하게 인도해줄 지도자에 목마르다. 오바마는 이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보여주는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오바마의 연설에는 정책은 없고 감정에 호소하는 선동적 메시지만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비판을 주도하는 힐러리는 자신이 오바마보다 능력있고 경험많아서 변화도 잘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힐러리는 “Yes We Can”같은 노래는 감정에 호소하는 가짜 이미지라고 평가절하할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든든한 연예계의 지원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윌아엠은 NPR(National Public Radio)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연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했다. 공화당의 존 맥케인의 연설이 내 마음을 움직이면 언제든지 또 노래로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은 프랑스에 공화주의체제를 만든 나폴레옹에 영감받아 “영웅”을 작곡하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로 등극하자 베토벤은 무척 화를 내고 헌정을 거두었다고 한다. 음악에 영감을 준 그 정치인의 연설이 부디 거짓이 아니길 바란다. 거짓에 헌정된 노래만큼 치욕스러운 것은 없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기사가 되었습니다.

In Category: 사회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Show 6 Comments
  • 아도니스 2008년 2월 9일, 4:31 am

    이래저래 미국은 참 부럽네요. 힐러리도 괜찮고, 오바마도 괜찮고..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이유로 누구 찍을까 고민되겠습니다.

  • 류동협 2008년 2월 10일, 1:47 am

    아도니스 — 정말이지 선거가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죠. 이번에는 민주당이 되는 분위기인데, 누가 될지 도저히 예측을 못하겠더군요.

  • syd K. 2008년 2월 15일, 8:52 pm

    이거 맥케인 버전 패러디도 나왔대요 ^^;;;

  • 류동협 2008년 2월 17일, 12:35 am

    syd K. — 오바마가 역시 대세인가봐. 맥케인은 오바마의 키워드인 “Hope” 빌려다 연설문 짜고, 힐러리도 “yes we can”을 의도적으로 쓰더군. ^^

  • 마리 2008년 3월 3일, 9:05 pm

    흠…괜찮은데?

  • 류동협 2008년 3월 4일, 12:00 am

    마리 — 정치와 음악이 이렇게 어울리기도 하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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