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형광등 빛마저 나가고

수다스럽던 문 굳게 닫히고

텅 빈 버스 안

때가 찌든 손잡이가

끼익 소리내며 흔들린다

아직 남아있는 나른한 체취

맡으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바람이 사람들을

어둠이 바람 사이를

헤드라이트가 어둠 사이를

가로지르며 빠르게 달려가는

버스의 무자비한 질주

가로등 위로

달빛이

퍼지고

내리고

흐르고

무수한 빛줄기들 속속

눈썹 새로 파고 든다

빛깔 없는 안개

울컥울컥 피어난다

종점을 향하는

무서운 속도로도

이 밝디 밝은 어둠을 떠나지 못하리

이 시는 1995년 즈음에 쓴 글입니다. 연말이 되니 이 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잘 쓴 시는 아니지만 그 무렵 제가 느끼는 심정을 잘 표현한 글이라 옮겨 적습니다.

In Category: 창작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Show 4 Comments
  • foog 2007년 12월 26일, 5:10 am

    이 시를 읽고 생각난 노래.
    김광석 – 거리에서
    the smiths –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 류동협 2007년 12월 26일, 2:06 pm

    foog — “거리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죠. 가사도 음악도 마음에 와닿았는데 그런 노래에 이 시가 비교되니 기분이 좋군요. 아래 팝송도 한번 찾아서 들어봐야겠습니다. 🙂

  • 마리 2008년 1월 3일, 3:06 am

    정말 오랜만인걸 ^^
    신입생 환영회 때가 생각나 ㅋ~

  • 류동협 2008년 1월 3일, 12:26 pm

    마리 — 인터넷 창작모임이라도 한번 만들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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