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바람처럼 날아온 오즈의 마법사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디 갈런드가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가 매장 구석구석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노래를 들으며 이미 마음 속 무지개를 넘어 오즈의 나라에 있는 에머랄드 시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때마침 영화 “오즈의 마법사(이하 ‘오즈’)” 70주년을 기념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캐릭터 인형이 보이고, 머그잔과 모노폴리 게임까지 오즈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이 서점을 두루두루 장식하고 있었다.

미국 서점에 진열된 오즈의 마법사 관련 상품

2009년 9월에는 영화 개봉 70주년을 기념해 미국 전역의 400여 개가 넘는 영화관에서 디지털로 복원된 “오즈”가 상영되었다. 더불어 DVD와 고화질 블루레이판도 재출시되면서 오즈의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2010년이 되어도 오즈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영화 “오즈”를 각색한 뮤지컬이 2월 16일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시작해서 6월 27일 위스콘신주 애플튼까지 공연된다. “오즈”를 서쪽마녀의 시점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위키드(Wicked)”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고, 전국 순회 공연도 한참 진행되고 있다. 뮤지컬 뿐만이 아니다. 국제 “오즈” 학회가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에서 2010년 5월 14일에서 16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오즈”가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온 미국이 이렇게 법석인가.

캔자스주 시골 소녀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에 날려 오즈의 나라로 떨어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란 벽돌길을 따라서 펼쳐졌던 도로시와 일행의 흥미진진한 모험은 7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도로시와 친구들은 영화관, 공연장이나 텔레비전 화면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온 미국이 오즈의 마법에라도 걸린 것일까.

판타지 동화의 성공 이야기

MGM이 28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영화 “오즈”는 1939년 개봉할 때만 하더라도 300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다.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맞춘 그저 그런 작품이 될 운명이었다. 그러던 “오즈”가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데에는 새롭게 등장한 텔레비전의 영향이 컸다. 1956년 11월 3일 CBS에서 방송된 “오즈”는 4,500만 명의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모았다. 시원찮았던 극장 수익과 비교하면 방송 데뷔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오즈”는 1959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방송국을 바꿔가며 방송되고 있다. 부활절, 독립기념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에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오즈”를 보게 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오즈”는 1900년 프랭크 봄이 쓴 같은 제목의 책이 원작이다.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의 영향을 받았던 프랭크 봄은 유럽의 동화보다 무섭지 않고 재미있는 미국의 동화를 창조하려고 했다. 그의 소망대로 “오즈”는 유럽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동화책이 되었다. 영국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있다면, 미국에는 “오즈”가 있다. 이 책은 출간된 해에만 이미 2만 5천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그리고 1902년에는 프랭크 봄이 직접 대본을 쓴 뮤지컬로도 다시 태어나며, 미국을 대표하는 이야기로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주디 갈런드가 주연한 1939년 영화 이전에도 “오즈”는 이미 여러 편의 단편 무성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1920년에는 프랭크 봄이 직접 장편 무성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원작과 달리 왕권을 노린 총리 크룰이 오즈 왕국의 공주였던 도로시를 납치해서 캔자스로 보내버린다. 이 이야기 속의 도로시는 다시 오즈로 돌아와서 허수아비와 다른 친구들과 힘을 합쳐 왕권을 되찾는다.

1939년에 MGM에서 제작한 “오즈”는 원작과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테크니컬러의 생생한 시각적 효과를 위해 원작의 은색 구두가 진홍색으로 바뀌었고, 영화의 상영시간에 맞추기 위해 도로시의 긴 모험이 약간 줄어들었으며 서쪽 마녀의 비중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변화를 제외하고는 원작동화에 충실한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스크린 너머 세계로

“오즈”는 책, 영화, 음악, 뮤지컬, 연극, 텔레비전, 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1975년에는 “오즈”의 출연진이 모두 흑인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위즈(Wiz)”가 만들어져, 뮤지컬작품상을 비롯하여 7개 부문의 토니상을 휩쓸었다. 이러한 뮤지컬의 흥행을 바탕으로 1978년에는 다이애나 로스와 마이클 잭슨 주연의 동명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로써 오즈는 인종의 경계조차 넘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뮤지컬 “위키드” 역시 2003년부터 현재까지 장기 공연하면서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토니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양철 나무꾼이 주인공이 되어 미래사회 오즈를 보여준 텔레비전 시리즈 “양철 인간(Tin Man)”이 공상과학채널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도 “오즈” 열풍에 동참하여 2010년 웨스트엔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손희준이 그린 “도로시”라는 만화가 2006년에 출간되었다. 이쯤되면 “오즈”는 더이상 미국만의 동화가 아니라 세계의 동화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오즈”는 기념일마다 방영되는 인기있는 한 편의 고전영화로 머물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여러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며 미국을 넘어 세계 대중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미국 국회도서관이 1989년에 영화 “오즈”를 중요한 문화적 기록물로 분류해 보관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오즈의 문화적, 역사적 영향력을 인정한 것이다.

정치적 우화가 숨어있는 오즈?

환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꿈같은 이야기 “오즈”는 어린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하지만, “오즈”가 단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많은 학자는 “오즈”를 판타지 동화를 넘어선 정치적 우화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럿거스 대학의 휴 라코프 교수에 따르면, 프랭크 봄은 “오즈”를 쓰면서 1890년대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1896년 잡지 Puck은 농민을 허수아비로 묘사

원작에서 프랭크 봄은 정치적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정치적 암시가 있다는 해석에 대해 부인하지도 않았다. 오즈의 삽화를 그린 윌리엄 댄슬로와 프랭크 봄은 실제로 1890년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봄과 댄슬로가 만든 캐릭터와 이미지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양철 인간, 허수아비, 회오리바람, 마녀, 마법사, 사자, 난장이는 1890년대 정치 풍자만화에서 아주 흔하게 등장하던 상징이었다. 봄과 댄슬로는 당시에 유행하는 정치적 풍자와 상징을 빌려와서 도로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 것이다.

1890년대 풍자만화에서 허수아비는 농민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자주 쓰였다. 양철 인간은 유럽과 미국의 민속예술에서 산업노동자를 대변하는 이미지였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기계화되어 가는 노동자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이미지가 있을까. 양철 인간과 허수아비가 힘을 모으는 것은 농민과 산업노동자의 동맹을 의미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에 관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1918년에는 미네소타주에서 농민-노동자당이 결성되기도 했다.

도로시가 오즈의 나라에서 만나는 난쟁이는 평범한 미국의 시민을 상징하며, 이들을 지배하던 서쪽마녀와 동쪽마녀는 바로 기업인,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인, 집권당 등의 당시 기득권 세력을 은유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흔히 마법사로 비유되곤 했다. 미국의 25대 대통령인 윌리엄 맥킨리는 뛰어난 정치적 전략 때문에 마법사로 자주 불렸으며, 정치인을 마법사에 빗대는 표현은 당대에 유행하던 화술이었다.

1897년 잡지 Judge는 대통령 맥킨리를 마법사로 묘사해 풍자

1890년대 정치 잡지에서 회오리바람은 정치적 격변기를 표현하는 이미지로 빈번히 사용되었다. “오즈”에 등장하는 회오리바람은 1884년에 양당체제의 미국에서 제3의 정당인 민중당(The Populist Party)이 등장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893년에서 1897년까지 미국은 극심한 불경기를 겪으면서 사회 갈등이 극에 치달았고 민중당은 대안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오즈”는 1890년대 정치적 상황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즈”는 세대를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오즈”를 관통하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에 많은 현대인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실하고 정직한 농민과 노동자가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즈가 사랑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도로시 일행이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역경을 극복하고 에머랄드 시티에 이르는 모험담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환상을 제공한다.

“오즈”는 동성애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오즈”에 나온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이중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도로시의 친구인 캔자스의 농장 일꾼들은 동시에 오즈의 사자, 허수아비, 나무꾼이기도 하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동성애자들의 이중생활을 연상시킨다. 오즈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를 속일 필요없이 자유롭게 사는 삶은 동성애자들이 원하던 세계가 아니었을까.

“오즈”는 세대, 인종, 계층, 성 정체성을 가리지 않고 소외계층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오즈”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주고 희망을 보여주는 동화였다. 비록 오즈는 미국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했지만 전 세계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아마도 “오즈”의 이야기가 희망이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1890년대 암울한 정치, 1930년대 대공황, 현재의 경제위기에도 “오즈”는 무지개 너머의 넘실거리는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게 비록 환상이라도 그 유혹은 무척이나 달콤하다.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이라도 언젠가 밝은 미래가 올 거라는 희망이 있기에 세상은 살 만하다.


In Category: 문화, 역사

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Show 0 Comments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