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학력을 넘어선 사랑

왓에버 웍스 (Whatever Works, 2009)

우디 앨런이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유럽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며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다가 그의 전형적인 뉴욕 유태인 코미디로 복귀했다.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끝도 없어서 잠시도 참지 못하는 지식인 노인과 아름답고 성격까지 좋은 젊은 여자친구가 티격태격 다투며 사랑하는 영화. 우디 앨런의 팬이라면 초반 5분만 봐도 단숨에 그의 영화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영화가 “왓에버 웍스”다.

보리스(래리 데이빗)는 컬럼비아대학 물리학 교수로 일하다가 은퇴하고 친구들과 카페에서 어울려 잡담하며 말년을 보내고 있다. 그는 노벨상을 거의 탈 만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 지식인이다. 우디 앨런의 분신인 보리스는 뉴욕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며 멍청하고 비합리적인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을 조롱한다. 잘난 척하는 보리스의 현실은 참담하다. 그는 바람난 아내와 이혼하고 그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마저 실패한다.

세상을 우습게 보는 보리스는 웃음거리가 된다. 보리스는 자신을 스스로 천재라고 말하지만 아이처럼 무서운 꿈에 놀라서 쩔쩔매기도 한다. 그는 멍청하다고 놀리던 맬로디(에반 레이첼 우드)를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세수를 할 때마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기이한 행동도 그의 괴짜 행적에 이바지한다.

맬로디는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무턱대고 뉴욕으로 와서 우연히 보리스를 만난다. 그녀는 미인대회에 나갈 미모를 갖췄지만 똑똑한 편은 못 되었다. 그녀는 보리스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고 반대 성향만 가졌다. 다행히 그녀는 보리스의 괴팍한 성격을 다 받아주고 그의 두뇌를 존경할 넓은 마음을 가졌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보리스의 성격을 다 받아줄만한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 맬로디의 엄마와 아빠가 뉴욕으로 상경하여 자아를 찾아가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재미있다. 남부의 종교적 보수적 세계를 벗어난 이들은 뉴욕의 자유로운 생활에 젖어가면서 모르고 있던 자신의 재능이나 정체성을 깨닫는다. 뉴욕이란 장소가 주는 힘이 영화에 개입하는 지점이다. 뉴욕에만 가면 사람이 변한다는 이야기란 말인가? 뉴욕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영화로 보여준 우디 앨런이니까 그런 생각도 해볼 만하다.

멜로디와 보리스의 사랑도 아주 예외적 관계다. 60대 노인과 20대 여인이 사랑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비록 나이 차이를 극복하더라도 학력 차이도 벽처럼 단단하다. 클래식음악과 고전영화만 좋아하는 보리스의 취향과 메탈음악과 춤추는 걸 좋아하는 멜로디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건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다. 멜로디와 보리스는 수많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운명도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탄생했다. 우디 앨런이 30년 전에 제로 모스텔이란 코미디 배우를 위해 대본을 썼지만 그가 죽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만들어졌다.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뉴욕도 변했고 세상도 달라졌다. 2000년대 후반의 뉴욕정서를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70년대의 뉴욕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떤 관객은 향수로 이 영화를 즐길 수 있고, 다른 이는 시대와 상관없는 노인의 판타지로 볼 수도 있다.

“왓에버 웍스”는 우디 앨런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전형적 감수성이 다 표현된 대표작인 것은 틀림없다. 섹스앤더시티가 패션을 사랑하는 30대 여자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라면 이 영화와 우디 앨런의 다른 뉴욕 영화는 지식인의 사랑과 일상의 절정이다. 캐리와 우디가 만나서 사랑한다면 어떨까? 왕자님을 꿈꾸는 캐리가 염세적이고 냉소적 우디를 좋아할 이유도 아마 없을 것이다. 우디의 성격을 다 받아줄만한 아량이 캐리에겐 없다. 한 성깔하는 캐리는 우디와 뉴욕 어느 커피하우스에서 대판 싸우고 쿨하게 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디 앨런 영화에는 수다스럽고 냉소적인 지식인이 자주 등장한다. 우디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은 직설적으로 할 말을 다하는 편이다. 비슷한 성향의 영화 감독으로 한국의 홍상수 감독과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영화적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에게 공통점도 있다. 모두 지식인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감독의 시각을 대변하는 인물을 빌어서 세상을 풍자하거나 지식인 자신을 까발리기도 한다. 보리스가 카메라를 향해서 말하는 대화는 직설화법으로 관객에게 말걸기다. 그 대화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고 수다는 그치지 않는다. 보리스의 앵앵거리는 말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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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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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건우 2009년 12월 27일, 12:54 am

    동협이형, 잘 지내시죠? 형이 쓴 영화 리뷰를 읽어보니 형의 말대로 우디 앨런의 새 영화는 애정 결핍에 인정 욕구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있는, 왜소한 지적인 남자들의 ‘고무 젖꼭지’ 같다고나 할까요. 연말이라 그런지 창밖을 바라보는 눈길이 아무 이유없이 멀어졌다 흐려지는 요즘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언제 한국에 들어오면 즐거운 낯빛으로 다시 만나요. 새해에도 만사형통하시고요.

    • 류동협 2009년 12월 28일, 9:31 pm

      건우야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 연말이라 기분이 약간 들떠있기로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거 같다. 연말은 그 애정결핍이 더 커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지. 너도 감기 조심하고 건강한 얼굴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할게. 행복한 새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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